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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한다정 Oct 29. 2022

지향하고 좋아하는 모습으로 채우기

다시 춘천, 첫서재

검은 캐리어를 들고 문 밖으로 나왔을 때 실감이 났다. 잔뜩 설레고 조금 긴장되었다. 오랜만이었다 이런 감정이. 문 밖에 무언가가 있다는 것을 분명히 아는 여정은 늘 울렁울렁 거리는 감정과 함께 온다.




기차로 한 시간 반, 버스로 갈아타 세 시간 반... 긴 시간이었는데 잘 실감 나지 않았다. 춘천에 오기 직전, 절대적으로 시간이 많이  필요한 일을 받아서 이동하는 동안에도 자료를 찾고 정리했기 때문에 더 그랬던 것 같다. 어느새 춘천이었다. 버스에 내리고 길을 걷는데 추울까 봐 겹겹이 입었던 게 무색할 정도로 날씨가 너무 좋고 가로수가 노오랗게 물들어 있었다. 더욱 꿈같았다.


버스를 타고 숙소에 가는 길, 눈에 익을 길을 보며 '혹시, 여기가 거기일까?' 하며 지도 앱을 켰는데 여기가 거기였다. 첫 다락에서 일어나 아침 산책을 나왔던 길이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 머릿속에 저장되었나 보다. 숙소에서 첫서재로 가는 길과감하게 걸었다. 내가 걷는 길이 맞다는 이유 모를 확신이 었다. 4월인데도 춥고 영업 전이라 어두웠던 육림 고개를 지나며 감회가 새로웠다. 새로운 가게가 공사를 하고 있었고 나도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 들었다. 고개를 다 오르니 춘천에 있는 동안 내내 보았던 주황색 지붕과 그 뒤의 성당까지 보였다. 첫서재였다.



아침부터 저녁까지 거의 혼자 있었던 첫서재에 사람이 가득했다. 로컬과 서점에 관한 책이 있었던 카운터 옆 진열대에는 작가님의 책으로 채워져 있었고 커피맛이 어떤지 물어보던 초보 카페 사장님은 이제 끊임없이 오가는 손님들도 능숙하게 응대하고 계셨다. 평일 낮 2시에 첫서재라는 공간에 사람이 가득 차 있는 걸 보기분 좀 묘했다. 내 가게가 잘된 것 마냥 기쁘기도 하였고 나만 알고 싶은 공간이 모두의 공간이 된 것 같아 아주 약간의 아쉬움도 들었다.


첫서재에 다시 오는 순간을 너무 고대하고 기대했는데 공기 한 숨, 햇살 한 줌, 하나하나 음미하는 못했다. 그래도 첫서재 가득히 채워진 따뜻한 마음느껴져 눈물이 찔끔 났다. 1년 반 전의 나와 지금의 내가 남처럼 느껴졌다. 에너지가 가득했지만 갈피를 못 잡고 있던 과거의 나. 많은 일을 벌이고 있지만 계속 물음표만 들어가는 지금의 나. 과거의 내가 애틋하기도 지금의 내가 애처롭기도 했다.




2박 3일 동안 매일 첫서재를 찾아갔다. 춘천을 구경하기 제일 좋은 시기에 방문해서 한 공간에만 있는 게 아쉽지 않냐라는 질문받았는데 그럼에도 첫서재와 첫서재가 있는 약사동의 분위기가 참 좋았다. 이 공간에서는 과거의 나를 계속 더듬어갈 수 있어서 더욱 그럴지도 모른다. 첫서재를 찾아온 날 그리고 떠나는 날, 작가님과 잠시 대화를 나눴다. 변함없이 많은 것을 배울 수 있는 따뜻한 분이셔서 지금의 나돌이켜 보게 되었다.


첫서재 같은 공간을 만들고 싶었는데 지금 나는 어디쯤 와있을까? 좋은 사람들을 만나 재미있는 일을 하면서도 종종 소진되고 있다는 기분이 들었이유를 찾았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살기 위해 계속해서 나를 채찍질했다. 시간에 쫓겨 순간에 매몰되었다. 지금 내가 어떤 모습인지, 내가 지향하고 좋아하는 모습으로 나를 채우고 있는지 몰랐다. 이제는 아니까 달라질 수 있다. 잠깐이라도 멀리 바라보는 시간을 가지고 길을 확인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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