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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 Feb 16. 2024

아빠 옆에서 계속 살 줄 알았는데

눈 떠보니 결혼 준비 중입니다

"아빠, 나 아빠 옆에서 계속 살아도 돼?"


몇 년 전, 아버지와 장 보러 가는 길에 문 이런 말을 했다. 그때는 연애를 안 하고 있었 연애 생각었다. 지금 내 상황이 편안하고 평안하여 계속 이런 모습이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어쩌면 내내 아버지 곁에서 살 것 같다. 아버지는 이 질문에 "그럼 당연히 되지~"하고 기꺼이 긍정하셨지만 믿지 못한다는 듯 그런 사람들이 꼭 일찍 간다며 어디 보자는 이야기를 덧붙이셨다. 거기에 나는 웃음을 치며 그럴 리 없다 단언했다.


하지만 인생은 뜻대로 흘러가는 법이 없다. 어쩌면 저 말이 내 인생의 복선이었을까. 지금, 결혼을 준비하고 있다. 불과 한 달 전만 해도 내가 결혼을 준비하는 예비 신부가 될 줄은 몰랐다. 쓰면서도 놀랍다. 올해는 '도전'이 목표였고 첫 책으로 포문을 열었으니 다음에는 어떤 일을 벌여볼까, 어떤 걸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만 많았다. 정해진 것은 없으니 우선 미뤄둔 휴식을 취하자는 생각으로 일본 여행을 떠났는데, 마지막 밤 마지막 행선지였던 전망대에서 프러포즈를 받았다.


야경이 하나도 보이지 않은 전망대, 아쉬운 마음에 더욱 요모조모 살펴보 내려가려는데 남자친구가 "잠시만"하며 난간 쪽으로 이끌었다. 그리고 결혼하자며 주머니에서 반지를 꺼냈다. 진짜 상상도 못 한 일이라 너무 놀라고 얼떨떨하고 이게 꿈인가 하며 믿기지 않는 온갖 감정이 들었다. 결혼하는 친구들을 보면서 '에이 아직 나는 아니지~' 하며 한참 멀었다고 생각했는데, 나만의 생각이었다. 어쩌면 그조차도 아니었나 보다. 생각보다 프러포즈와 결혼이 쉽게 받아들여졌고 크게 기뻤다. 부모님께 인사는 언제 드릴지, 친구들에게 소식은 어떻게 알릴지, 오히려 적극적으로 이야기를 꺼낸 건 나였다.


프러포즈를 받고 나니 둘인데 하나같은 기분이 들었다. 생전 처음 느껴보는 감각이었다. 전망대에 올라가기 전과 후, 달라진 건 말 한마디인데, 만나는 기간에 느꼈던 유대감과는 확연히 다른 유대감이 느껴졌다.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묘한 감정에 마음이 간질간질거렸다.


한국에 돌아와 가족들에게 소식을 알렸다. 아버지는 소식을 듣자마자 보리랑 산책을 갈 시간이라며 나가셨고, 언니는 왜 진작 이야기를 안 했냐고 했다. 아마도 결혼준비를 어느 정도 하다가 프러포즈를 받았다고 생각한 것 같다. 제일 빨리 이야기한 건데... 그리고 동생은 역시 결혼을 안 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제일 빨리 간다며 웃었고 동생의 여자친구와 어머니는 크게 축하해 주셨다. 다들 놀랬지만 서서히 결혼 준비하는 딸, 동생, 누나에 적응하는 중이다.


아주 천천히 친구들에게도 알리고 있다. 매번 친구들의 결혼 소식이 들리면 당연히 축하하지만 어딘가 섭섭하고 허한 감정이 들었기에 어떻게 하면 친구들에게 잘 이야기를 할 수 있을까 한참을 망설였다. 하지만 좋은 소식에 기꺼이 축하해 줄 친구들을 알기에 용기 내서 소식을 전해본다. 그리고 글로도 적어본다. 연애 이야기를 남기는 게 쑥스러워 늘 다른 일상의 이야기를 썼는데 오늘은 그게 안된다. 캘린더도 살펴보고 내 머릿속도 뒤져봤는데 요즘 주로 생각하는 주제가 결혼이다 보니 결국 쓰게 되었다. 다 쓰고 나니 후련하고 이제야 나도 서서히 실감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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