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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하는 걸 좋아해

가족과 보내는 시간, 시작, 따뜻한 날씨

by 다정

기다리고 기다리던 봄이 성큼 왔다. 3월 내내 봄이 올 듯하면 추워지기를 반복해 진짜 봄 같은 하루가 간절했는데 드디어 그날이 온 거다. 마침 이번 주말은 드라이브와 데이트가 약속되었기에 더욱 설레는 마음으로 온전히 봄을 맞이할 수 있었다.


토요일에는 아버지와 함께 하동과 남해까지 갔다 왔다. 원래 목적은 남해에 계시는 고모할머니를 뵈러 가는 거였는데 어쩌다 보니 전라도 초입까지 들렀다 남해 끝자락까지 다녀오게 되었다. 제철박사인 아버지는 차에 타자마자 지금 매화가 피는 시기이니 매화를 보러 가자고 했고 우리는 자연스레 섬진강 매화마을로 향했다. 검색해 보니 광양 매화축제는 '매화 없는 매화축제'로 저번주에 끝난 상황이었다. 축제가 끝났으니 사람도 없고 더 좋겠다며 휴게소에 들러 호두과자도 사 먹고 신나게 섬진강으로 향했다. 섬진강은 재첩이 유명하다는 아버지의 말에 따라 점심 메뉴까지 뚝딱 정해졌다.


섬진강에 다 와가니 도로 곳곳에 매화가 활짝 펴서 봄맞이 드라이브 기분이 제대로 났다. 펴있는 매화만큼 차도 많아졌는데 전국 제철챙기미들이 모두 여기로 온 게 분명했다. 커다란 관광버스, 주차요원, 행사장으로 가는 셔틀버스까지 여전히 축제 같았다. 마을에 도착하니 푸드트럭부터 몽고천막까지, 볼거리 먹거리 놀거리가 한가득했다. 사람들 속에서 팝콘 같은 하얀 매화와 홍매화를 구경하니 복잡하지만 들뜨며 제대로 봄을 맞이하는 기분이었다. 이 순간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 아버지와 오빠의 모습을 열심히 사진으로 담았는데 그 덕에 오늘 하루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아버지와 오빠가 함께 매화꽃길을 걸어가던 뒷모습이다. 올해 봄은 이제 시작이지만 오래도록 이 장면으로 기억할 것 같다.




일요일에는 봄맞이 신발 세탁을 하고 영화를 보러 갔다 왔다. 전날의 피곤함은 늦잠으로 물리치고 운동화 세탁을 하러 나온 순간, 봄이라 기분이 좋았다. 햇살이 내리쬐는 양과 바람 부는 정도, 공기 중의 습도까지 모든 게 완벽한 봄이었다. 모두 같은 걸 느꼈는지 세탁방을 오가는 사람도 많았는데 다들 이 날을 얼마나 기다렸을까 싶어 더 신났다. 운동화 건조를 마치니 영화를 보러 갈 시간이었는데 가벼워진 옷차림도 뽀송뽀송한 운동화도 전부 새로운 시작이라는 기분이 들어서 너무 행복했다. 오늘 볼 영화는 오빠가 깜짝 이벤트로 예매를 한 거라 끝까지 어떤 영화인지 모르고 영화관에 도착했는데 오빠가 좋아하는 영화, 내가 좋아하는 영화를 오가며 추측하는 과정도 재미있었다.


영화를 다 보고 나와서는 마음이 더욱 말랑해져서 나왔는데 오빠가 고른 영화가 완전 내 취향이었다. 제목은 '플로우'이고 제목처럼 물이 차올랐다 내려가는 세계에서 검은 고양이가 여행을 떠나게 되는 내용의 애니메이션이다. 고양이와 동물들이 주인공이라 대사는 하나도 없었지만 풍성한 이야기를 들은 것 마냥 완전히 몰입되었다. 고양이, 카피바라, 골든 리트리버, 여우원숭이, 뱀잡이수리까지 얼떨결에 여행에 합류해 자기만의 방식으로 지내지만 우여곡절을 함께 하며 결국 서로를 위한다. 영화를 보는 동안 긴장되는 순간도 있었지만 곁을 내어주는 작은 따뜻함과 이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며 마음이 평화로웠다.


혼자 지내는 게 익숙하고 편해 보이던 고양이가 배에 탔던 친구들을 찾아 뛰어갈 때 제일 벅차올랐는데 결국 우리를 구하는 건 우정, 사랑, 다정함 같은 따뜻한 마음이라는 걸 또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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