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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최고의 선물

맞춤형 생일상과 '와이프 감사일기'

by 다정

봄을 좋아한다. 꽁꽁 싸매야 했던 추위가 힘을 잃고 옷이 가벼워지고 새싹이 올라와서 그런 것만은 아니다. 거짓말처럼 4월 1일이 내 생일이기 때문이다. 어릴 때에는 내 생일만 되면 거짓말로 축하한다는 친구들이 그렇게 미웠는데 지금은 이를 태연히 넘기는 어른이 되었다. 나이 먹으며 장난이 줄기도 했다. 장난은 태연히 넘기지만 욕심은 늘어서 지금은 생일을 준비하는 마음가짐부터 다르다. 4월이 오기도 전부터 생일을 맞이할 준비를 하고 4월이 끝날 때까지는 그냥 내 생일로 퉁쳐버린다. 꽃도 피고 날씨도 좋고 하늘도 맑으니 좋은 게 좋은 거라며 조금 뻔뻔해졌다.


그래서일까 어머니가 3월이 끝나기도 전에 미리 생일 선물이라며 케이크와 와인을 보내주셨다. 예상보다 훨씬 빨리 도착한 선물에 꽤 놀라면서도 이제 곧 생일이구나 싶어 더 들떴다. 남편도 언니와 제주도에서 생일을 맞이할 나를 위해 일찍 생일상을 준비해 줬다. 들뜬 마음을 감추지 못하는 나에게 남편은 주방에 들어오지 말라며 엄포를 놓았고, 장모님이 생일 선물을 주셨으니 본인도 '생일 선물 아닌 선물'을 곧 줘야겠다며 모를 소리를 했다.


덕분에 편하게 낮잠을 자고 일어나니 생일상이 완성되었다. 도저히 메뉴가 짐작가지 않았는데 알듯 말 듯 맛있는 냄새가 나서 기대가 더 커졌다.


"생일이면 뭐야?"

"무슨 음식 제일 좋아해?"


오빠는 힌트를 주려는 듯 여러 질문을 던졌는데 나는 머릿속에 갈비찜만 떠올랐다. 알쏭달쏭한 상태로 생일상을 보니 카레미역국이 있었다. 이제야 힌트가 맞춰졌다. 생일 하면 미역국, 제일 좋아하는 건 카레였다. 카레와 미역이라니 상상도 못 한 조합이었지만 정말 나만을 위한 맞춤형 생일상이구나 싶어 감동이었다. 다만, 생김새가 조금 낯설어 첫 입은 조심스러웠다. 국물이 좀 많은 카레일까 노란 미역국일까 싶었는데 새로운 요리였다. 다진 고기와 양파까지 들어가 뜨끈하게 기운을 보충해 주는 '카레미역스튜'였다. 열이 잘 안나는 편인데 한 그릇 비우니 속부터 따뜻한 열이 차오르는 게 느껴졌다. 내가 좋아하는 걸로 요리해 주려고 이리저리 찾아보고 맛있는 한 끼를 만들어준 오빠에게 너무 고마웠다. 충분히 고맙고 감동이었는데 저녁을 다 먹을 때쯤 오빠가 생일 선물 아닌 선물이라며 무언가를 꺼냈다.


20250329_182642.jpg 오빠와 어머니의 사랑으로 완성된 생일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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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은 익숙한 모양새였는데 2달 전쯤 다이소를 구경하다가 나에게 골라달라고 했던 손바닥만 한 빨간 노트였다. 그때는 그냥 노트가 필요했나 보다 싶었는데, 이걸 지금 다시 보니 뭐지 싶어 어안이 벙벙했다. 오빠는 이 노트가 와이프 감사일기라고 했다. 2달 전쯤인가 유퀴즈에 송혜교가 나와서 감사일기를 쓴다고 했던 거에 영감을 받았다고 했다. 생각해 보면 자신은 하루 중 감사할 일이 와이프뿐일 텐데 싶어 노트를 산 뒤부터 매일 써왔다고 했다. 앞으로도 계속 쓸 거기 때문에 생일 선물 아닌 선물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노트를 펼치기도 전에 눈물이 났다. 어떻게 이렇게 생각할 수 있을까? 작은 노트 한 권이 너무 묵직하게 다가왔다. 시간과 정성, 사랑이 필요한 일이라 감동받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 장, 한 장을 넘기며 찬찬히 읽어보니 그날 내가 한 요리, 우리가 나눈 대화가 옮겨져 있었다. 덕분에 2달이 생생하게 기억났다. 매일 이렇게 기록했다니 곱씹을수록 감동이었다. 받은 마음을 더 크게 주고 싶어 하는 건 내 특징인 줄 알았는데 우리 부부의 특징인가 보다. 부부라 닮아가는 걸까? 오빠의 마음이 꾹꾹 담긴 최고의 선물을 받은 만큼 앞으로도 나는 오빠에게 감사일기에 적힐 일을 많이 많이 만들어줘야겠다.


20250329_184624.jpg 미리 채운 내 생일날 감사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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