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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를 봤다

잘된다는 말 한마디가 필요해서

by 다정

연애프로그램은 하나도 안 볼 것 같은 지인에게 <신들린 연애>라는 프로그램을 추천받았다. 시즌2가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였는데 너무 재밌다며 시즌1부터 보라고 추천에 추천을 했다. 연애프로그램을 볼 때 과몰입하는 타입이라 감정소모가 심해 거리를 두고 있었는데 그때의 나처럼 과몰입한 지인을 보니 홀린 듯 영업당해 버렸다. 신들린 연애는 무당, 사주, 타로 등 점술가들이 나오는 연애 프로그램이라 오빠가 좋아하는 분야는 아니었는데 다행히 자기 전에 보는 콘텐츠가 다 떨어진 참이라 오빠를 보다 쉽게 설득했다.


별 기대 없이 보기 시작했는데 첫 화부터 완전 과몰입했고 오빠는 그런 나를 보며 재밌어했다. 생년월일만으로 운명의 상대를 고르는 게 신기했고 만나면 알아볼까 하는 것도 관전 포인트였다. 한눈에 이 사람의 사주, 특징 등을 파악하는 걸 보며 절로 용하다는 소리가 나왔다. 다른 연애프로그램은 서로 탐색하고 견제하는 걸 보며 감정소모가 되는 편인데 점술가들이라 그런지 굳이 어렵게 탐색하지 않아 좋았다. 운명이라 느끼는 사람과 호감이 가는 사람 사이에서 자기감정이 어떤지 살피는 일이 많아 보기 편안했다.


특히 나보다도 어린 MZ무당이 나와 더 신기하고 재밌었다. 무당을 떠올리면 무섭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는데 이 프로그램을 통해 거리감이 조금 좁혀졌다. 어떻게 무당이 되었는지를 알게 되고, 좋아하는 감정 앞에서 똑같이 망설이고 고민하는 모습을 보니 무당이라는 직업을 가진 한 인간으로 친근감이 들었다. 오방기를 훅 펼치거나 신묘한 종을 흔드는 모습도 보다 보니 적응되어 무섭기보단 어떤 결과가 나올지가 더 궁금해졌다. 미래를 짐작하는 건 큰 일 같은데 되게 아무렇지 않게 상황을 추측하고 읽어내는 모습을 보면 정말 신기했다.


과몰입해서 시즌1, 2를 몰아보고 드는 생각은 결국 내 마음이 중요하다는 거다. 사람 마음은 보이지 않아서 점술가들도 각자의 방식으로 힌트를 얻고 이를 상황에 맞게 해석한다. 긍정적이라면 내 마음에 용기를 더하고 부정적이라면 결심을 더 다진다. 출연자 대부분 최종 선택에서 운명보단 마음을 택했는데 커플이 되든 되지 않든 마음에 솔직한 선택을 하고 나니 홀가분해 보였다.


인생에 정답을 없다는 말이 계속 떠오른다. 불안한 시기, 막연한 상황에서 한참 있다 보면 정답이 궁금해진다. 이 상황이 언제 끝나는지, 어떻게 지나가야 할지 궁금하다. 나도 취준 기간에 못 이기는 척 친구들을 따라 사주를 보곤 했다. 돌이켜보면 맞은 건 없지만 '잘된다'는 한마디가 그 당시의 나에게 큰 도움이 되었다. 아마 점술은 그런 역할인 것 같다. 정답을 알려주기보단 불안한 마음을 달래주고, 지금 이 상황을 어떻게 다르게 해석할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가이드. 미래를 걱정하고 고민하며 현재를 보내기보단 다시 현재를 살 수 있게 해주는 신비한 상담사. 신들린 연애에 과몰입한 척 사주를 보고 덕분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다시 오늘도 잘 살아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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