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말이 궁금하지 않은 서바이벌은 처음입니다
새롭고 재미난 콘텐츠에 목이 말라있다. 남편과 저녁을 먹으면서 예능 보는 게 루틴이라 늘 새로운 볼거리가 필요하다. 꼬박꼬박 챙겨 보는 건 <냉장고를 부탁해>, <나는 솔로>인데 다른 볼거리를 하이에나처럼 찾아다니다 어떤 콘텐츠든 꽂히면 냉부와 나솔을 제쳐두고 몰아보기도 한다. <더 지니어스> 시즌1, <크라임씬> 전 시즌, <오징어게임>, <진격의 거인> 등을 볼 때는 다음 화가 궁금해 저녁 시간을 기다릴 정도였다. 함께 이스터에그도 공유하고 추측하고 과몰입하며 덕질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가장 최근에 정주행 한 <신들린 연애> 이후에 다른 새로운 걸 찾는 우리에게 새로운 시즌이라며 뜬 데블스플랜은 새로운 기대였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보는 동안 감정소모가 크지만 생존에 대한 절박함과 치열한 두뇌 싸움 때문에 계속 찾아보게 된다. 일상에서 느끼기 어려운 감정도 간접적으로 체험하고 '저 상황에서 나라면'을 가정해 이야기를 나누는 것도 흥미롭다. 우승을 목표로 치열하게 고민하는 플레이어를 응원하며 이번엔 누가 게임체인저가 될지 추측하는 재미도 있다. 한 명의 예리함으로 게임 전체가 반전되는 순간을 볼 때 그 짜릿함은 충격적인 만큼 도파민으로 다가온다. <데블스 플랜 1>에서 이시원과 하석진이 숨겨진 비밀을 풀었을 때, <더 지니어스>에서 게임 룰을 역이용한 홍진호를 봤을 때 도파민 최고치였다. 이처럼 서바이벌 프로에서만 볼 수 있는 순간이 있기에 <데블스 플랜: 데스룸>도 어떤 똑똑이들이 얼마나 멋진 승부를 보여줄지를 기대가 컸다.
실제로 게임이 시작되자마자 감옥동과 생활동의 비밀을 파헤치기 위해 눈에 불을 켠 플레이어들을 보며 열정과 집념, 승부사 기질에 절로 감탄이 나왔다. 목숨을 걸고 승부에 뛰어드는 강심장들이 멋있었다. 무서워하면서도 본인의 한계를 이겨낸 모습을 볼 때면 더 이입되고 응원하게 되었다. 그렇게 에피소드 하나하나 열심히 정주행 하면서도 묘한 감정이 느껴지는 구간이 종종 있었다. 모두가 생존, 승리, 우승을 위해 플레이를 하는데 한없이 이타적인 모습을 보일 때 멈칫했다. 신념을 지키는 것처럼 보이지만 모순된 행동을 할 때면 애정이 식었다. 연합이니까 팀이니까 그럴 수 있지, 인간 군상은 다양하다며 이해하려 노력하다가도 김이 빠졌다.
끝내 마지막화 보기를 포기하고 저녁 시간이 붕뜨면서 화가 났다. 왜 이렇게까지 과몰입했나 살펴보니 실망이었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 참여한 플레이어의 목적이 우승이 아닐지는 모르겠지만 프로그램을 보는 나의 목적은 치열함이었다. 우승을 향해 어떤 수를 놓는지 그 과정을 기대하고 응원하며 궁금해하며 다음 화를 봤다. 그런데 점점 재미가 없어졌다. 치열하기보다는 치졸했다. 거기에 응원하던 플레이어들이 모두 떨어지니 더 보고 싶지 않았다. 결승에 어떤 게임이 나올지조차 궁금하지 않아서 티브이를 꺼버렸다. 애매하게 붕 뜬 저녁시간을 멍하니 보내며 아쉬움은 점점 짙어졌다. 준비된 과몰입러로써 부디 다음 콘텐츠는 끝까지 과몰입할 수 있는 거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