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소설이 필요한 때

어디든 떠나고 싶은 마음

by 다정

독서잡식러라 책이면 좋아한다. 소설, 에세이, 인문, 경제/경영, 자기 계발 등 가릴 것 없이 읽는다. 책을 읽는 행위 자체가 휴식이라 무엇을 읽느냐보다는 무엇이든 읽는다는 게 더 중요하다. 손이 가는 종류는 때에 따라 다른데 구분하자면 소설과 소설이 아닌 책으로 나뉜다. 고등학생 때까진 일본 미스터리 소설이나 한국 장편 소설을 즐겨 읽었고 대학교에 올라가선 마케팅이나 심리학과 관련된 책을 읽었다. 졸업하곤 에세이를 읽다 자기 계발을 읽었고 정치/사회를 읽다 다시 에세이로 돌아왔다.


내내 소설을 읽을 때와 아닌 때로 구분되는 이유는 온전히 나에게 있다. 소설에 손이 가지 않았던 때를 살펴보면 마음에 여유가 없었다. 내가 발붙이고 살고 있는 여기, 지금 나에게 필요한 무언가를 찾아 헤매는 중이라 다른 세계에 가고 싶지 않았다. 무언가가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어디선가 명확한 답을 찾길 기대하며 책을 읽었다. 별세계는 영화를 통해서 잠깐 다녀왔다. 멸망한 이후의 세계나 멸망하기 직전의 세상으로 취향은 과격해졌지만 잠시 현실을 떠나오는 걸로 충분했다.


어느 순간 그걸로 부족해 소설을 찾았다. 책을 읽었는데도 제대로 쉰 것 같지 않고 이유 없이 책에 대한 갈증이 났다. 시간을 내어 한참 소설을 읽고 나니 이거였구나 싶다. 다른 세계, 저 머나먼 별세계에 흠뻑 빠져드는 시간이 필요했다. 여러 사람과 새로운 대화를 나누며 긴 여행을 함께 다녀오니 그제야 좀 숨이 트였다. 저 멀리 나폴리에도 가고 2099년에도 가보고 이름 모를 산골짜기에도 다녀오니 살 것 같다.


그 덕에 지금 내가 땅에 발을 붙이다 못해 늪처럼 빠지고 있었구나 깨닫는다. 빠져나오려고 애쓸수록 점점 더 깊게 빠지고 있었는데 소설이 나를 인형 뽑기 하듯 쏙 하고 뽑아내 다른 세계에 내려놓았다. 잠시 들른 그 세계가 평화롭고 아름답기만 한 건 아니지만 거기선 주인공과 함께라 괜찮다. 현실보다 더 날카롭게 벼린 문제들이 널브러져 있어도 함께 울면서 포기했다가 아주 조금씩 일어나면 되었다. 주인공이 문제래도 큰 문제는 아니다. 친해지진 못하더라도 조금 멀리서 지켜보면 된다. 그렇게 한참을 돌아다니다가 책을 덮으면 마음속이 개운하다. 어느새 발에 묻은 진흙도 말라 툭툭 털어낼 수 있다.


한동안 열심히 다른 세계를 찾아갈 것 같다. 얼마나 새로운 별천지가 있을지 궁금하고 기대된다. 너무 다행인 건 추천받은 소설이 한가득이라 한참을 읽을 수 있다는 거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서바이벌 프로그램을 보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