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콩피, 얼룩, 야우출책
누군가의 취향이 드러나는 공간을 좋아한다. 취향이 드러나는 공간이라고 하면 좋아하는 것들의 한데 모은 곳이라기보단 쌓여온 시간을 눈으로 볼 수 있는 공간이다. 공간을 찬찬히 뜯어보다 그 속에 있는 디테일을 발견하면 공간을 꾸민 누군가와 대화하는 기분이 든다. 나와 비슷한 취향을 발견하면 그렇게 반갑고 생각지도 못한 걸 발견하면 알아가고 싶다는 욕심도 생긴다. 최근에 방문한 카페들이 모두 이런 공간이었다. 오랜만의 나들이라 어디든 좋았겠지만 취향이 드러나는 공간이라 더욱 좋았고 채워지는 기분이었다.
전포에 있는 '비콩피'는 무더위가 시작되기 전에 방문했는데 골목 쪽 통창을 다 열어놓고 있어 존재감이 확실했다. 매장 입구에 식물이 자라고 있는 화분들이 진열되어 있고, 뒤 유리벽 너머에는 나무들이 보여 초록초록을 뿜어내고 있다. 마치 동남아 휴양지로 여행 온 것처럼 이국적이고 평화로운 기분을 느끼게 만든다. 단순히 인테리어가 예쁘고 분위기가 좋은 걸 넘어서 디테일한 취향, 지향이 곳곳에서 발견되었다. 물병과 물컵 옆에는 'water for your dog'라고 쓰인 안내판과 함께 강아지용 물그릇이 있고, 카페 내부에 강아지 의자도 마련되어 있다. 벽에는 일요일 아침에 진행하는 요가 프로그램 안내 포스터가 붙여져 있고 에어컨 위로 요가매트가 쌓여 있는 게 보인다. 눈에 들어오는 몇 가지만 살펴봐도 허들 없는 공간, 건강과 돌봄을 쌓아가는 공간이라는 게 느껴졌다. 공간에 대한 호감은 공간을 운영하는 사람에 대한 호기심과 관심으로 이어진다. 분명 배울 점이 많은 좋은 사람일 것 같다.
전포 끝자락에 있는 '얼룩'은 평범한 골목길 2층에 위치한 카페인데, 문을 열고 들어가면 순식간에 공간이 주는 분위기에 압도당한다. 공간 안에 창틀을 여러 개 만들어 뒀는데 창 뒤로 초록초록한 나무들이 그려진 패브릭 커튼이 보여 갑갑함은 줄고 신비로움이 커졌다. 감탄하며 공간을 자세히 들여다봤는데 눈이 닿는 곳마다 취향을 저격당해 점점 더 좋아졌다. 우선, 입구 옆 책장에는 '얼룩의 서재'라며 읽을 수 있는 책이 놓여 있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으로 열람용 도서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좋았는데, 바로 위로 시선을 옮기니 북셰어링 코너도 있었다. 북셰어링이 뭘까 궁금한 마음에 안내문을 보니 '시간이 흘러도 남아있는 '얼룩'처럼 책을 나누며 나의 고유한 흔적을 나누고, 책을 나눔 받으며 좋았던 시간을 가져가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얼룩이 어떤 카페인지, 무엇을 지향하는 곳인지가 단박에 느껴졌다. 또, 이름 모를 누군가와 소통하는 법도 하나 배웠다. 언젠가 혼자 와서 여유롭게 방명록도 쓰고 내내 책을 읽고 싶다.
가장 최근에는 초량에 위치한 동네서점이자 카페인 '야우출책'를 다녀왔다. 바다와 다리, 높고 낮은 건물이 훤히 다 보이는 전망보다 좋았던 건 공간 곳곳에 배치되어 있는 문장들이었다. 사람들이 눈이 닿을 만한 곳에 위로와 돌봄의 문장이 자리 잡고 있었다. '당신이 이해할 수 없는 것은 그대로 두세요. 당신이 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합니다.' 등 눈으로 읽기만 해도 고개가 끄덕여지고 졸였던 마음에 긴장을 풀게 하는 문장들이 곳곳에 있었다. 싱잉볼과 작은 불상들까지 보니 마음 건강을 지향하는 공간이구나 확실히 느껴졌다. 또, 손님들과 자연스레 안부를 주고받는 사장님을 보며 마을의 사랑방 같다가도 한없이 평화로운 나만의 작업실 같기도 했다. 언젠가 이곳을 도피처 삼아 무언가를 쓰러 올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머물수록 더 좋은 야우출책을 큰 부침 없이 오래오래 운영하시기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