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 선수도 스토리가 있지"
남편은 며칠 전부터 이번 주말에 롤드컵 결승이 있다고 이야기했다. 롤드컵은커녕 월드컵도 관심이 없는 편이라 '부산에서 지스타도 한다던데, 일부러 시기를 맞춘 건가?' 하는 아무 말로 맞장구치곤 금방 잊어버렸다. 남편은 잊을 만하면 계속 롤드컵 이야기를 꺼냈다. 금요일 저녁엔 "롤드컵 결승 얼마 안 남았네!" 했고, 바깥 활동이 많아 정신없던 토요일도 갑자기 "내일이면 롤드컵 결승이네!" 했다. 그쯤 되니 롤드컵이 평소에 게임을 안 하는 사람도 기다릴 정도로 큰 행사구나 싶었다. 그럼에도 롤드컵을 볼 거라는 생각은 못했다. 내가 아는 롤은 '페이커'와 <아케인> 시리즈뿐이었다.
그런데 일요일, 저녁을 먹고 평화롭게 <다 이루어질지니>를 보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지금!! 롤드컵 하겠다! 잠깐 봐도 돼?"라는 말을 들었다. 갑자기? 싶었지만 며칠 동안 롤드컵이라는 단어를 들으면서 은연중에 스며들었는지 어영부영 알겠다고 했다. 유튜브에서 라이브 방송을 켰는데, 화면에서 알아볼 수 있는 게 하나도 없었다. 남편은 보자마자 지금 KT가 유리하다고 했다.
뭘 보면 유리하다는 걸 알 수 있는지 물어보니 남편이 일어나서 TV 옆으로 갔다. 화면을 가리키며 돈이랑 부순 타워 개수는 이거고, 캐릭터별 레벨은 몇인지 알려주었다. 화면을 가리키며 적극적으로 알려주니 나도 적극적으로 물어보게 되었다. 화면 보는 법을 익히고 롤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다. 만날 때마다 싸우는 게 아니라는 것도, F1처럼 초 단위로 싸운다는 것도, 캐릭터별 전략과 전술이 필요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롤은 5명이서 세 갈래 길에서 집을 지키는 게임이다. 5명은 각자의 역할이 있는데 덩치 큰 친구, 여기저기 다니는 친구, 마법 쓰는 친구, 멀리서 공격하는 친구, 도와주는 친구가 있다. 유일하게 아는 페이커는 미드라 불리는 주로 마법을 쓰는 친구였다.
게임 방식과 규칙을 알게 되자 더 재미있어졌다. 눈은 여전히 느렸지만 전쟁이 났을 때 어떤 선수를 먼저 찾아야 하는지를 알게 되자 점차 더 열심히 응원하고 아쉬워할 수도 있었다. 라운드가 끝나자 경기장 밖으로 걸어가는 선수들을 처음으로 제대로 보았다. 너어어어무 어려 보였는데, 빠르면 17살에 데뷔를 한다고 했다. 아직 젖살도 안 빠진 애기들이 저렇게 큰 무대에서 게임을 하다니, 국내가 아니라 세계 무대 결승에 한국에서 2팀이 오른 거라니. 뉴스기사에서나 접하던 한국 게임과 플레이어의 위상에 대해서 새삼 깨달았다.
선수들에 대한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오빠는 '저 선수도 스토리가 있지'하며 이야기를 시작했다. 모두가 주인공이었다. 어떤 선수는 팀에서 방출되었는데 지금 친정 팀을 이기고 결승전에 올라왔고, 어떤 선수는 '최고의 선수가 있을 곳은 T1이니까'라고 말하며 계약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선수 개인의 이야기를 알게 되니 응원하는 마음이 더 커졌다. 모두 각자의 자리에서 열심히 하는 모습이 그렇게 반짝거릴 수가 없었다. 다섯 번째 라운드까지 가서 T1이 우승했다. 3연속 우승은 처음이라고 새로운 역사가 쓰였다고 하던데, 그게 상투적인 말로 느껴지지 않았다. 자기 몸만한 트로피를 들어 올리는 모습에 노력과 기쁨이 느껴져 조금 울컥했다. 새로이 알게 된 세계는 흥미진진하고 박진감이 넘친다. 즐겨 찾을 진 모르겠지만 오늘 알게 된 선수들을 계속 응원할 거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