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에도 올해도 새해 목표는 운전이었다. 대학생 때 호기롭게 1종 보통으로 면허를 땄지만, 주민등록증에 밀려 신분증 역할도 못했던 면허증은 내내 장롱에만 있었다. 시간은 부지런히 지나서 면허를 딴지 10년이 되자 새로 갱신해야 한다는 알림을 받았다. 그제야 슬금슬금 운전을 해볼까 하는 마음이 생겼다. 작년에는 결혼 준비를 하며 열심히 블로그 글을 쓰고 종종 협찬도 받던 때라, 운전을 하면 더 멀리 다닐 수 있잖아? 하는 사심 가득한 생각도 들었다.
오빠에게 운전을 해보고 싶다고 하니 본인은 이미 준비가 되었다며 들떠했다. 연애하는 동안 혼자서 '운전 연수 커리큘럼'을 머릿속에 만들어두고 시뮬레이션하고 수정하기를 반복했다고 한다. 첫 연수는 어쩌다 발견한 개발 중인 신도시 근처 공원이었다. 주말이 되면 차도 사람도 하나도 없어 운전 연수하기에 딱 좋았다. 가족끼리 특히 부부사이에 운전 연습 시켜주는 거 아니라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는데, 역시 직접 해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거였다. 오빠는 직접 만든 커리큘럼을 바탕으로 차근차근 다정하게 알려줬다. 세상에서 제일 빠른 30으로도 달려보고 신호가 있는 것처럼 멈춰보고 좌회전, 우회전하며 감각을 익혔다. 그러다 바빠져 운전대를 잡을 틈도 없이 한 해가 지나갔다.
그리고 2025년 새해 목표로 '운전'을 세웠다. 작년보다 꽤 구체적으로 목표를 정했다. 개금 집에서 본가 영도까지 운전해 보기, 올해는 꼭 이루고 싶었다. 다시 저 멀리 신도시 근처 공원으로 갔다. 그래도 한번 해봤다고 운전석에 앉아있는 게 꽤 익숙해졌다. 솔직히 고백하자면 엑셀과 브레이크 위치도 헷갈려 물어보던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오빠는 심장을 쓸어내렸지만, 이제는 사이드를 내리고 기어를 바꿔 출발하는 것, 속도를 올리고 차선을 바꾸는 것도 꽤 자연스러워졌다. 시댁을 오갈 때, 휴게소에서 휴게소까지 운전해 보고, 차가 별로 없는 시골길에서도 운전대를 잡아봤다. 천천히 운전하는 시간과 거리를 늘려갔다. 그사이 오빠는 차 뒤에 초보운전 딱지도 붙이고, 운전자 보험도 들어줬다.
영도를 오가는 일이 생기면 오빠는 아바타 운전을 시켰다. 연애하면서부터 봤던 길이라 그런지 네비를 안 봐도 머릿속에 네비가 있었다. 어디서 차선을 옮기고 어디서 좌회전하고 우회전하는지 오빠는 내가 시키는 대로 운전했다. 신기하게도 집까지 오는 길이 전부 맞았다. 그리고 이번 추석 연휴 마지막날, 보성에서 감이며 밤이며 잔뜩 받아와 바로 영도를 들리기로 했다. 오빠는 이번에 운전해 볼래? 하고 물었고 나는 덥석 물었다. 사상에서 바로 영도로 갈 줄 알았는데, 오빠는 집에서 출발해 보자며 개금까지 왔고 집에서 다시 영도로 출발했다. 여기서 차선을 변경하고 저기서 터널을 타고, 부산역 뒤를 지나 부산대교 그리고 영도까지. 드디어 목표를 반절 이뤘다. 주차도 어색하고 운전을 하는 나도 어색하지만 드디어 어른이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드디어!
운전에 대한 재미와 자신감이 붙어가기 시작한다. 가장 최근에는 대구 결혼식장까지 직접 운전했다. 이렇게 적으면서도 믿기지가 않는다. 집에서 출발해 결혼식장 야외 주차장까지 골목길, 고속도로, 시내도로를 모두 경험했다. 물론 아직도 부족하고 종종 오빠가 옆에서 가슴을 쓸어내리며 혼자서 운전하기까지 1년은 멀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시작은 이렇게 좌충우돌 우당탕탕인 거 아닌가 싶다. 물론 나도 1년까지는 오빠 옆에서 천천히 실력을 쌓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혼자 갑자기 멀리 떠나보는 로망은 1년 뒤에나 가능하겠지만, 그래도 어른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했던 운전을 하게 되어 신기하고 너무 좋다. 내가 언제 어디까지 갈 수 있을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