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은 현실이 된다
올해 인터뷰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원래도 사람에 대한 궁금증이 많고 먹고사는 일에 대한 질문이 많은 편인데, 작년 한 해 동안 주변에 왜? 어떻게?라는 질문이 떠오르는 사람을 많이 만났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서라도 물어야 했다. 한 달에 한 번, 떠오르는 사람에게 연락을 드렸다. 만나서 짧게는 1시간 반, 길게는 3시간 동안 대화를 나눴다. 어떻게 시작했으며 어떤 과정을 거쳤는지 어려움은 없었는지, 질문이 끊이지 않았다. 삶을 깊게 들여다보는 인터뷰는 영감투성이었고 나는 어떤 자세로 살고 있는지 돌아보게 만들었다.
이 이야기를 잘 전달하고 싶었다. 늘 글을 써왔지만 마음가짐이 사뭇 달랐다. 귀한 시간을 내주신 만큼 만족스러운 글을 쓰고 싶다는 욕심이 났다. 인터뷰가 끝나자마자 나에게 와닿은, 전하고 싶은 한 가지를 찾는다. 인터뷰 전체를 펼쳐 여러 갈래 길을 따라가 본다. 이 길이 맞을까, 저 길이 맞을까 헤매다 보면 뚜렷한 한 가지가 보인다. 완성된 글을 상상하며 쓰기 시작한다. 시일을 두고 여러 번 살펴본 뒤 인터뷰이에게 초안을 전달한다. 인터뷰이도 만족한다면 이를 인스타와 브런치에 공개한다. 그제야 한숨을 돌린다. 그런데 인터뷰를 할수록 계속 갈증이 났다.
내가 받은 영감과 긍정적인 에너지를 글에만 담기에는 아쉬웠다. 더 많은 사람에게 닿고 싶었고, 인터뷰이에게도 더 많이 돌려드리고 싶었다.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좋을까를 고민하다가 글을 선물처럼 드리자고 결심했다. 인터뷰이의 매장, 작업실 등에 잘 어울릴만한 결과물을 상상하며 다양한 방법을 시도했다. 패브릭 소품샵 대표님의 인터뷰는 종이가 아니라 패브릭에, 미니진을 만드는 작가님의 인터뷰는 여덟 페이지 진으로 만들었다. 내가 이렇게 글을 만져본 적이 있던가? 이미 세상에 나온 글이지만 다양한 방법을 시도하는 게 재미있었다. 어디에 어떻게 옮길지 준비하고 고민하는 과정은 힘들지만 재밌었고 결과물을 보니 굉장히 뿌듯했다. 인터뷰를 할 때마다 이 글을 어디에 옮겨 볼까 하는 즐거운 고민도 따라왔다.
인터뷰이가 떠오르는 형태로 만들려 애썼다. 전통 공예를 현대적으로 풀어내시는 대표님 인터뷰는 전시 포스터처럼 만들고 싶어 커다란 포스터 종이에 인쇄하였고, 미술 공방을 운영하며 종종 작품 전시도 하는 대표님 인터뷰는 전시장에서 볼 수 있는 리플렛처럼 인쇄했다. 빈티지 의류 스튜디오를 기반으로 다양한 활동을 하는 대표님 인터뷰는 25 시즌 룩북을 모은 잡지처럼 만들었고, 티셔츠 브랜드를 운영하는 대표님 인터뷰는 반팔 티셔츠에 인쇄했다. 반려동물 수제간식을 만드는 대표님 인터뷰는 종이가방에 클립으로 고정해 나가는 엽서를 상상하며 만들었고, 화과자 가게 대표님 인터뷰는 기사나 잡지처럼 느껴지게 세로 리플렛으로 만들었다.
무언가가 생기니 이를 모아 보여주고 싶어졌다. 전시 같은 걸 하고 싶어졌다. 처음 상상한 형태는 인터뷰 글과 인터뷰이의 창작물을 함께 두어보는 것이다. 플리마켓 형태로 그 창작물을 팔아 볼 수도 있고 아니면 작가와 만나는 시간을 가져도 좋을 것 같았다. 머릿속에서 이런저런 상상만 하다가 시간이 흘렀다. 문득 6월에 인터뷰했던 여원 대표님이 떠올랐다. 전시와 플리마켓을 함께 하는 '부산로마'를 만드셨으니 물어보면 어떤 실마리든 찾을 수 있을 것 같았다. 혹은 부산로마에 함께 해도 좋겠다는 마음이었다. 가벼운 마음으로 여쭤봤고, 며칠 뒤에 답이 왔다. 전시 장소를 발견했고 이야기를 끝냈으며 다른 작가 한 분과 삼인전을 하는 건 어떠냐는 제안까지 한꺼번이었다. 상상하던 모습과는 다르지만 처음이니 이렇게 시작해도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바로 전시를 준비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