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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말 회고 zine 자랑하기

여행같았던 2025년

by 다정

연말이 되니 회고를 해야 한다. 시간이 흐를수록 한 해가 지나가는 속도가 빨라서 이 순간을 기억하기 위해선 뭐든 해야 한다. 이럴 땐 주로 몸을 움직이는 편이다. 한 해 동안 차곡차곡 모은, 모아놓고 보니 쓰레기인지 아닌지 헷갈리는 것들을 정리한다. 여행지에서 강박적으로 챙겨 온 리플릿, 티켓, 영수증 등을 한데 모으고, 꼭 지류로 인쇄하는 영화티켓도 시간 순으로 정리한다. 전시장, 도서전 등 어디선가 받아온 리플릿과 스티커들까지 정리하다 보면 '이게 올해라고?' 싶은 일도 있고, '이게 뭐더라?' 싶은 물건도 있다. 증거를 수집해 사건을 해결하는 탐정처럼 흔적을 따라 나의 한 해를 돌아본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이 흔적들은 간단히 정리됐다. 먼슬리 다이어리에 날짜를 표기하고 예쁜 마스킹테이프로 붙이면 끝이었다. 원래보다 2배로 두꺼워진 다이어리에 한 해가 담겼다. 작년부터는 조금 달랐다. 다이어리 한 권이 아니라 A4용지 한 장에 한 해를 담았다. 티켓을 자르고 리플릿, 영수증 등에서 한 단어 혹은 한 글자를 오렸다. 16p 미니 zine 위에 모든 것을 재조립했다. 온전한 상태로 수집하듯 모으는 게 아니라 나만의 생각으로 오리고 붙이니 오히려 한 해가 더 선명하게 기억 남는다.


올해는 16p zine은 비행기 탑승권 느낌으로 만들었다. 올해의 여행부터 올해의 문화생활을 경유해 올해의 성취로 이어진다. 올해의 여행은 7월 친구들과 일본 여행, 9월 맛 따라 국내 여행, 11월 베트남으로 아버지 환갑여행을 각각 2p에 담았다. 몇 박 며칠의 여행을 작은 2p에 옮기려니 기억을 더듬어 제일 좋았던 게 무엇인지 고민하게 된다. 떠올리고 고민하고 선택하면서 추억이 더욱 선명하게 남는다. 일본 여행에서 제일 좋았던 건, 오사카보다는 교토, 교토에서는 특히 푸른 나무들을 담은 너른 창이 있던 호센인이 좋았다. 맛 따라 여행에서는 찐빵을 시작으로 고기호떡, 가지튀김 등 쉴 틈 없이 먹었던 것들이, 베트남 여행에서는 푹 쉴 수 있었던 리조트가 좋았다.


올해는 특히 문화생활이 많았다. 영화관도 부지런히 갔고 공연도 많이 봤다. 특히 영화를 보고 나서 오빠와 둘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한참 나누는 시간이 좋았다. 이걸 '할말지수'로 기록했는데, 배경부터 캐릭터 그리고 그 너머의 이야기까지 한 시간 넘게 이야기한 <미키 17>이 10점 만점에 10점, 색다른 영화라 감상보다는 감명이 깊었던 <플로우>가 7점이었다. 이 지수가 높을수록 영화가 좀 더 선명하게 기억 남는다. 또, 감상을 공유할 사람이 있어서 그런지 이야깃거리를 많이 만들어주는 영화가 점점 더 좋아진다.


올해의 성취는 좋아하는 걸 더 파고들고 발견한 순간들이다. 광안리해변도서전, 밀양은대학, 마우스북페어 등 책, 글, 사람에 가까이 있는 순간들 덕분에 에너지를 다시 채울 수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걸 좋아한다는 사실도 새삼 깨달으며 내년에도 선명하고 깊게 만나, 하고 싶은 일을 재미있게 하고 싶다는 마음을 다진다.


사부작사부작 zine을 다 만들고 나면 올해도 참 잘 보냈다는 생각에 마음이 뿌듯하다. 이제 올해 찍은 인생네컷을 사진첩에 옮기고 용량이 가득 찬 갤러리와 탑처럼 쌓인 책들을 정리하는 일만 남았다! 정리하고 옮기고 비워진 만큼 또 열심히 채워질 거라 생각하니 벌써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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