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살에 죽기로 결심했습니다
책이 많이 있는 서재, 창문을 바라보는 흔들의자 위에서 책을 읽다가 잠들 듯이 평온하게 눈을 감았다. 이런 나를 남편과 비서가 발견한다. 100번째 생일, 2095년 4월 2일 나는 세상에 큰 미련 없이 홀가분하게 이 삶을 마무리한다. 장례식장에는 내가 좋아하고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다. 언젠가부터 100살에 죽을 예정이라고 말한 탓에 다들 그리 놀라진 않는다. 다만, 이마저도 말한 대로 이뤄졌음에 놀란다. 사람들은 삼삼오오 모여 나와의 추억을 공유한다. 제자로 보이는 한 명이 나와 추도문을 낭독한다. "다정 선생님은..."으로 시작되는 그 목소리를 통해서 내가 어떤 길을 걸어왔는지, 무엇을 해왔는지 알게 된다.
작년에 위대한 12주라는 모임에서 나의 죽음을 선명하게 그려봤다. 죽는 날을 정했다는 표현이 더 적합할 지도 모르겠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정하고 상상하고 이후의 과정을 그리며 직접 추도문도 썼다. 내가 죽기 전에 남기는 유언장이 아니라 누군가가 들려주는 추도문이라 굉장히 색달랐다. 제삼자의 시선에서 바라본 나를 통해 오히려 지금을 돌아볼 수 있었다. 지금 내가 가고 있는 길 끝에는 이런 모습이 있구나, 나는 이런 길을 가게 되는구나. 불안과 고민이 덜어졌다.
이를 누군가와 나누고 싶었다. '나'를 돌아보지 못할 정도로 바쁜 동료들, 삶의 방향을 고민하는 창작자들과 함께 나누면 더 좋을 것 같았다. 언젠가 해봐야지 하는 마음만 가지고 있다가 아이레 님을 만났다. 마우스북페어에서 스태프로 만난 아이레 님을 한 번 더 보고 싶어 인터뷰를 핑계 삼아 연락드렸다. 인터뷰 이후에도 교류하며 '부산에서 동료 찾기 프로젝트'를 함께 하게 되었다. 첫 모임 주제를 고민하다가 연초에 할 수 있는 이야기... 신년 계획에서 죽음으로 아이디어가 확장되었다. 마지막에서 시작을 이야기하는 아이러니함이 우리 모임에 꼭 맞았다. '1월에 죽음 생각하기'로 모여 함께 추도문을 쓰고 나누기로 했다. '언젠가' 하면서 가지고만 있던 씨앗이 알맞은 자리에 뿌리를 내렸다.
<씨앗호떡회*>라는 이름으로 1월의 마지막날 모임을 열었다. 각자가 생각하는 '죽음'에 관한 이야기나 물건을 공유하고, 언제 처음을 죽음을 인식하였는지, 사후세계가 있다고 믿는지 등을 이야기했다. 사람을 살리는 책을 추천받았고, 원하는 장례식장의 모습도 떠올려봤다. 매년 유언장을 쓴다는 이야기, 다음 생이 있다면 무엇으로 태어나고 싶은지 들으며 내 마음도 들여다볼 수 있었다. 이후엔 함께 추도문을 쓰고 나누었는데, '어떤 얼굴을 놓치지 말아야 할지 알게 되었다'는 말이 참 인상 깊다. (*씨앗호떡회에는 씨앗들이 씨앗 호떡으로 모이는 것처럼 우리도 모여보자는 의미와 씨앗호떡처럼 유명해져 보자는 포부가 담겨있다.)
마지막으로 '나의 경험 중에 죽기 전에 꼭 해보기를 추천하는 활동'을 미션카드처럼 만들어 무작위로 뽑아봤다. 씨앗호떡회에서 또 만나기, 집 근처 버스정류장에서 가장 먼저 오는 버스를 타고 17번째 정류장에서 내려서 사진 5장 찍기, 지리산 종주 등 크고 작은 미션을 공유했다. 호스트로는 이를 통해 느슨하고 지속적으로 연결되면 좋겠다 싶고, 개인적으로는 이 미션들이 선물 같다. 내가 생각한, 계획한 일이 아니기에 이것들이 나를 어디로 데려갈지 기대되고 궁금하다.
'죽음'에 관한 이야기만 나눴는데도 시간이 금방 지나갔다. 벌써부터 다음 모임이 기대된다. 어떻게 만나도 재미있을 것 같다. 이런 기대와 설렘을 가지고 계속 만나고 싶다. 부산에서 창작의 씨앗을 가진 동료들과 만나고 연결되고 무언가를 함께 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