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추석이 지나고 어느 날, 아버지랑 언니랑 함께 티비를 보고 있는데 김영옥 배우님이 직접 김치를 다져 김치만두를 만들고 계셨다. 만두는 사 먹기만 했지 한 번도 빚어본 적은 없어서 신기했다. 재료를 잘게 다져서 넣고 잘 섞기만 하면 만두소가 완성이라니 간단하고 쉬워 보였다. 그 순간 만두에 취해 언니와 아버지께 우리 다음 명절에는 만두를 만들어볼까? 하고 운을 띄우게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일이 많을 명절에 왜 일을 하나 더 만드냐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사실 우리 집은 일이 없다. 어머니의 명절 파업 선언 이후, 제사를 지내지 않기 대문이다. 매번 남들보다 빨리 시골에 내려가서 명절 음식을 만들고 제사를 준비하던 게 어느새 기억 저 편으로 흘러가버렸을 만큼 오랜 시간이 지났다. 몇 년 간은 연휴에 차 막히는 고속도로 위에 있지 않아도 돼서 좋았는데 나중에는 명절에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그리워졌다.
명절이 아니면 굳이 사 먹을 일 없는 약과부터 기름이 많이 튀어서 평상시에는 엄두도 내지 않는 튀김까지. 우리가 이를 그리워하자 아버지는 아무 날도 아닌데 종종 약과를 사 오셨고 명절 때 굳이 튀김이나 전을 부쳐 기름 냄새 가득할 일을 벌이기도 했다. 매번 우리 먹을 만큼만 만들자고 하는데도 그 이상이 만들어지는 신기한 과정을 몇 번 보내다 보니 내가 이 분위기를 좋아하는구나 깨달았다. 가족들이 모여서 사소한 걸로 장난치고 했던 이야기를 또 하고 작은 것에도 웃고 떠드는 이 분위기를 그리워했다.
여하튼 이번 명절에는 '만두 빚기'를 함께 벌였다. 연휴가 길었지만 시간을 맞추다 보니 설 당일 저녁에 만두를 빚을 수 있었다. 모든 요리가 그렇듯 재료 준비하는 데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내가 두부에 물을 꽉 짜내고 팽이버섯을 잘게 다지고 있으면 옆에서 언니가 김치를 다지고 부추랑 양파를 다졌다. 큰 스텐 다라이에 다진 고기와 손질된 재료를 몽땅 넣고 간장, 소금, 설탕 등으로 간을 한 뒤 야무지게 섞었다. 완성된 소는 반을 덜어내 김치를 넣었다. 재료 준비가 끝났으니 이제 만두를 빚을 차례였다.
그런데 여기서 만두를 한 번도 빚어본 적이 없는 티가 났다. 냉동 만두피를 미리 해동시켜뒀어야 하는데 만두소를 다 만들고 만두피를 꺼내니 바로 사용할 수가 없었다. 허겁지겁 물을 받아 담가 두고 그 틈에 잠시 앉아 쉬었다. 다음번에는 이러지 말아야지 다짐하다가도 과연 다음이 있을까 싶었다. 그래도 완성된 만두소를 볼 때마다 뿌듯하고 마음이 든든해서 아버지께도 자랑하고 인스타에 올려 친구들에게도 자랑을 했다. 그사이 만두피가 말랑해져 이제 진짜로 만두를 빚을 수 있었다.
동그란 상에 언니와 나, 동생과 동생의 여자 친구까지 둘러앉았다. 만두피에 소를 채워 넣고 만두피로 꼭 닫아주면 끝나는 단순한 과정인데 쉽지 않았다. 욕심내서 만두소를 잔뜩 넣는 바람에 만두피를 닫기 힘들었고 예쁜 모양을 내고 싶어 이렇게 저렇게 하다 보니 웬 외계인 만두가 되었다. 동생에게 "누나는 보기보다 손재주가 영 없네."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내가 만든 만두는 모두에게 웃음이 되었다. 우리는 열심히 만두를 빚고 아버지는 그 만두를 찜기에 쪘다. 찜기에서 방금 나온 만두의 때깔이 정말 최고였다. 꽉꽉 채운만큼 옆의 만두와 꼭 달라붙은 만두들은 윤기가 났고 소가 비쳐 먹음직스러웠다.
허겁지겁 만두를 먹었는데 정말로 맛있었다. 내가 만들어서가 아니라 진짜 인생 만두 수준이었다. 만두소를 만들고 만두를 빚고 찌는 긴 과정을 다시 할 수 있겠다고 마음먹을 정도였다. 사람들이 왜 집에서 만두를 빚는지, 수제만두가 이렇게 맛있는 거였는지, 이 맛있는 걸 여태 나만 몰랐던 건지 억울한 기분이 들 정도로 맛있었다. 다 함께 만두로 배를 빵빵하게 채우는 기분 좋은 저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