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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 Feb 11. 2022

어릴 때 들은 칭찬을 물었는데

우리 아빠의 고향은 삼천포

이번 설 연휴에 아버지와 나 이렇게 둘이서 시골을 가게 되었다. 처음을 떠올려보면 아버지와 둘이 떠나는 시골길은 조금 어색했던 것 같기도 하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가지고 있는 고민을 나누고 미뤄뒀던 일상 이야기도 하며 올라오는 길에는 통영이나 남해를 들려 기분 전환도 하는 드라이브가 되었다. 그렇기에 이번 시골행도 자연스러운 일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나의 사심이 들어간 계획된 행동이었다. 한 달 전부터 아버지께 인터뷰고 싶으니까 딸내미랑 데이트하자는 말을 했는데 시간을 맞추기가 꽤 어려웠다. 결국 이렇게 시골 내려가는 차 안에서 시작하게 되었다.



"아부지, 궁금한 거 있는데 물어봐도 돼요?"

"물어봐도 되지."


무슨 일인가 싶어서 아버지약간 긴장하는 게 느껴졌다. 처음 하는 질문에 나도 떨렸지만 덤덤한 척 궁금했던 질문을 하나 꺼내 물어봤다.


"아버지, 할아버지랑 할머니한테 들은 칭찬 중에 기억 남는 거 있어요?"



질문 하나에 아버지는 어릴 때 본인이 잘한 무언가를 열심히 찾는 듯했다. ... 아버지 어릴 때는 초등학교 입학전에 나무를 해올 수 있었. 해온다는 게 진짜 땔감으로 땔 거를 손질하는 건데 작은 포대 정도는 채웠지. 그때는 포대도 귀해서 할머니가 만들었는데. 그거를 하루에 몇 번이나 채웠지. ... 아버지는 저 멀리 기억의 귀퉁이에 있었던 추억들을 찾아 드문드문 연결되는 이야기를 시작했다. 날 것의 문장을 들으며 아버지의 어린 시절 모습을 상상수 있었다.


'할머니, 할아버지는 아침 일찍 일하러 나가시고 아버지 밑으로는 다 동생이니 아버지가 아침이 되면 직접 불을 때어서 동생들 밥을 챙겨주었구나. 키도 몸도 작았을 어린 시절부터 작은 포대를 채우러 몇 번이나 동네를 돌아다녔구나. 10번 밥을 먹으면 3번은 할아버지가 없었다니 칭찬을 들을 새도 없었구나. 그 시절에는 논이랑 밭이랑 가축들을 돌보고 바닷일까지 하느라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굉장히 바쁘셨구나.' 하며 해가 뜨고 지기까지 하루가 꽉 차게 바빴을 시골의 일상이 그려졌다.




아버지가 이야기하는 할머니의 모습에서 지금 아버지의 모습을 찾을 수도 있었다. 오 남매가 있는 집이니 이맘때쯤 할머니가 사 오는 강정은 이틀이면 동이 나고, 다른 집은 붕어빵 천 원어치 먹을 때 우리 집은 붕어빵 이천 원어치를 먹었다고 하셨다. 이걸 누구 코에 붙이노 하시면서 간식으로 먹을 도너츠도 세 봉다리나 사는 아버지의 모습에는 복닥 복닥 했던 오 남매의 어린 시절이 남아 있는 거구나 싶었다. 할머니가 비싼 과일은 아니더라도 집에 과일이 떨어지지 않게 사놓으셨다는데 "집에 과일 있나? 시장에 과일 사러 갈까?" 하는 아버지의 모습과도 겹쳐졌다.


그리고 일이 있든 없든 30년 넘게 매일 아침 일찍 출근하는 아버지의 부지런함은 할아버지를 쏙 빼닮았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 기억 속의 할아버지는 집 안에서 라디오를 들으시며 약주를 한 잔 하시고 식사를 하면서도 약주를 한 잔 하시던 모습인데 아버지의 이야기를 통해 만난 할아버지는 젊은 날, 술도 일하면서 마실 정도로 바깥에 일을 하러 부지런히 다니셨었다고 한다. 집에 하루 종일 있는 걸 못하고 여행을 가도 부지런히 돌아다니는 아버지가 할아버지와 닮았구나를 느꼈다.


옛날이야기를 아버지께 들을 때마다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을 상상하다가도 그렇게 오래된 이야기가 아니라는 사실에 매번 놀란다. 아버지도 얼마 전 내 나이를 지났고 모든 게 다 처음이었던 시절도 있었다는 걸 늘 잊는 것 같다. 이번 이야기를 통해서 젊은 날의 할머니와 할아버지까지 만날 수 있어서 좋았다. 지금 아버지께 남은 할머니와 할아버지의 모습까지 알게 돼서 뿌듯하기도 하다. 언젠가는 나도 내 모습에서 어머니와 아버지의 모습을 발견할 수도 있지 않을까? 그때가 되면 어떤 기분이 들까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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