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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 Feb 18. 2022

인생은 장비빨이다

장인이 아니니까 도구 탓을 해보자

나는 게임에 완전 젬병이다. 늘 게임만 하면 쉽게 죽어서 흥미를 금방 잃어버렸다. 어린 시절 나는 어른들 말씀을 잘 듣고 공부를 열심히 하는 아이였기 때문에 일부러 게임을 더 멀리하기도 했다. 내가 못하기 때문에 게임에 현질 하는 사람들을 잘 이해하지 못했다. 게임이 다양한 산업으로 변주되고 그걸로 돈을 버는 많은 사람들이 생기면서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지만 그렇다고 못하던 게임을 잘하게 된 건 아니다. 그렇지만 게임에 돈을 쓰는 그 이유는 알 것 같다. 구체적으로는 더 잘하고 싶은 욕심, 더 좋은 결과가 그 이유인 것 같다. 전자책 서비스에 월정액을 끊거나 필기감이 좋은 펜을 사거나 고민 고민 끝에 접이식 블루투스 키보드를 사는 나를 보면서 그렇게 느낀다.


나는 평소엔 물욕이 없다가도 '어 이거 사고 싶다!'는 생각이 들면 쉽게 끊어내지 못하는데 며칠을 고민해도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경우에는 구입하는 것만이 생각을 끝낼 수 있는 방법이다. 내 작업의 효율을 높이는 사소한 도구들에 대한 투자. 나는 나라는 캐릭터를 좀 더 잘 키우기 위해 현질을 하고 있다. 방금 구체적으로 언급한 접이식 블루투스 키보드는 가장 최근에 나를 몇 날 며칠 고민하게 만든 아이템인데 결국은 구매해서 이렇게 글을 쓰고 있다. 왠지 글이 더 잘 써지는 것 같은 기분을 느끼고 있다. 어쩌면 편리함과 함께 기분도 함께 구매를 한 건 아닐까 생각해본다.


그러고 보면 때마다 이런 물욕이 나를 찾아오는 것 같다. 혹은 영업 신이 다른 모습을 하고 정기적으로 나를 찾아오던가. 곰곰이 생각해본다. 이사를 하는 바람에 도서관과 멀어지게 되면서 그때부터 1년 간 고민했던 e북 리더기,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는 책을 읽으면서 영업당해 친구에게 생일 선물로 부탁한 클린켄틴 텀블러, 제주도에서 만난 작가 지망생 오빠가 가지고 다니는 걸 보며 그때부터 장장 1년여를 마음속으로 품고 있었던 접이식 블루투스 키보드까지. 꽤나 오랫동안 마음에 품고 있었던 것들을 하나씩 살 때마다 개운함마저 느낀다. 모든 걸 백 프로 알차게 사용하지는 못하지만 전부 다 좋은 구매였다.


내가 사용하는 것을 보고 친구들이 궁금해하면 본격적으로 영업을 하기도 한다. 친구들이 내 영업에 성공하여 같은 걸 살 때마다 느끼는 뿌듯함은 제품 개발자 정도일 거 같다. 적으면서 보니 나는 꽤나 영업 정신이 있는 사람이다. 얼리어답터는 아니지만 소신 있게 제품을 찾고 고르면서 나라는 사람의 형태를 나답게 채워가는 걸 좋아하는 것 같다. 이거 꽤 나답다, 나다운 제품이고 나다운 모습이다 라는 게 느껴질 때 행복하다. 이렇게 나다운 것을 하나하나 찾아가는 구매라면 가끔 찾아오는 물욕이라면 이젠 반가울 것 같다. 어쩌면 구매까지 또 1년을 고민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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