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엄마에 대해서 잘 안다고 생각했다. 기숙사 생활을 했던 고등학교 3년 내내 일주일에 한 번씩 집에 가는 길 그리고 학교로 오는 길을 어머니가 데려다주셨고 그 한 시간 동안 많은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 대화를 통해서 사실은 모르는 게 더 많다는 걸 알게 되었다. 우선 엄마는 나랑 같은 곳에서 태어났다. 지레짐작으로 아빠의 고향은 할아버지가 계셨던 삼천포이니 엄마의 고향도 외할아버지가 살던 양산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영도에서 컸고 잠시 대구에서 지냈다가 다시 영도로 와서 학교를 다녔고 내가 아는길을 걸어 등하교를 하셨다.
어릴 때에는 선생님이 되고 싶었는데 이는 누구나 한 번쯤 꿈꿔보는 학생들의 꿈이라며 말을 줄였다. 학교를 조용히 다니는 학생이었다고, 그렇게 특별한 기억은 없다고 말하는 엄마를 보며 내가 그때로 가 엄마의 친구가 되고 싶었다. 엄마의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엄마를 참 많이 닮았구나 느꼈다. 부모님, 선생님 말씀을 잘 들으며 집-학교, 집-학교만 오갔다던 엄마의 학창 시절이 나의 것과 겹쳐 보였고 결혼 전에는 현모양처가 꿈이었다고 말하는 엄마의 모습에서 그 시절의 나를 볼 수 있었다.
엄마는 꿈을 이뤘다. 내가 엄마를 보고 엄마를, 현모양처를 꿈꿨으니 그게 완벽한 증거 아닐까. 삼 남매에게 들어가는 비용이 만만치 않았을 텐데 뭘 못해본 기억은 없고, 오히려 피아노와 미술, 중국어 등 다양한 걸 했던 것만 기억난다. 밥과 국에 여러 반찬들까지 지금 나는 차릴 수 없는 호화로운 밥상을 매일 먹었고주말이면 산처럼 쌓인 엄마표 팬케이크를 삼 남매가 배부르게 먹었었다.물론 이제 나는 누군가의 아내나 엄마가 되는 것보다 나를 돌보고 키우는 게 우선이기 때문에현모양처는될 수 없고 엄마는 더더욱 모르겠다. 그러니 엄마가 처음이었던 엄마가 얼마나 대단했던 건지 이제야 조금씩 깨닫는다.
어머니께 궁금했던 몇 개의 질문을 하고 답을 들으니 나는 새로운 보물상자를 찾은 기분이다. 내가 몰랐던 엄마의 어린 시절부터 내가 뱃속에 있을 때의 이야기까지 신기한 것투성이다. 나는 아파트 주차장에서 또래 친구들이랑 뒤섞여 뛰어놀기 바빴던 그때가 어머니에게는 반짝반짝 빛나는 순간이었다는 것을 들으니 감회가 새롭다. 어릴 때 읽었던 책을 커서 다시 읽을 때처럼 안 보이던 게 보이고 지나쳤던 것의 의미를 알게 된다. 새로운 보물상자에 다른 어떤 추억들이 나를 놀라게 할지 궁금한 마음으로 하나씩 하나씩 물어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