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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 Mar 04. 2022

스물네 살에 결혼하다

딸이 쓰는 엄마의 이야기

고등학교 졸업을 앞두고 대학을 가고 싶었다. 공부를 빼어나게 잘하는 편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궁금했다. 대학은 뭐하는 곳이며, 어떤 공부를 하는 건지. 아버지께 대학을 가고 싶다고 말하니 대학은 무슨 대학이냐며 큰 소리만 들었다. 우리 집에서는 아버지 말이 곧 법이었고 나는 이제껏 아버지 말씀을 어겨본 적이 없었다. 아버지가 안된다고 했으니 안 되는 거구나 하고 체념했다. 내가 졸업식을 갔는지 안 갔는지도 기억나지 않는다. 10대는 굴러가는 나뭇잎만 봐도 웃고, 가만히 있어도 빛나는 시기라는데 나에게는 그저 무채색일 뿐이다.


졸업을 하자마자 쉴 틈도 없이 작은 회사로 출근했다. 변한 건 없었다. 집-학교 대신 집-회사를 오가는 게 다였다. 노는 게 뭔지, 뭐가 재미있는 건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으니 알지도 못했다. 그래도 궁금한 건 많았다. 회사에서 알게 된 아저씨가 소개해주는 군인과 펜팔을 주고받기도 했다. 남자와 이야기를 나누며 설렌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 휴가 나온 그와 딱 한 번 만나기도 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그걸 알게 돼 뺨을 맞았다. 나는 뭐가 잘못된 건지 알아차리기도 전에 아버지께 크게 혼이 났다는 사실에 놀라고 무서워 이후에 오는 연락을 받지 않았다. 그렇게 끝이었다.


이후에 회사 동생이 아는 오빠와 함께 만나는 자리를 만들었다. 숫기 없는 나와는 다르게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도 잘하고 밝은 사람이었다. 괜찮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에 몇 번 더 만났다가 이번에도 아버지께 걸리고 말았다. 퇴근하고 집으로 돌아오던 시간이 늦어지니 당연한 일이었다. 그렇다고 엄청 늦은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아버지는 뭐하는 놈인지 데려오라고 하셨고 얼마 만나지도 않았지만 그에게 물어봐야 했다. 아버지 보러 갈래요? 그는 알겠다고 했다. 아버지는 뭐하고 먹고 사는지 물었고 자기 가게를 차려 일하며 먹고 산다는 그의 대답에 그럼 결혼해라고 하셨다.


순식간이었다. 만나고 3개월 만에 그렇게 결혼하게 됐다. 나는 사실 엄하고 무서운 아버지 밑에서 벗어난다는 것만으로도 기뻤다. 드디어 집에서 나가는구나. 결혼을 말리는 사람들은 있었지만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 이제까지 어른들 말씀을 잘 들은 것처럼 똑같이 하면 되는 거 아닌가? 하며 나는 잘할 수 있을 거라고 믿었다. 졸업하고 꼬박 5년 가까이 다녔던 회사도 결혼식 한 달 전에 그만뒀다. 이제 좁은 단칸방에서 살림을 하게 되었다.




어머니께 짧은 이야기를 듣고 옮기며 듬성듬성 빈 부분이 있다는 걸 느꼈다. 앞으로 채워나갈 수도 아닐 수도 있지만 내가 모든 걸 이해할 수는 없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할 거 같다. 엄했다던 외할아버지가 원망스럽지만 이젠 물어볼 수 없기에 어머니를 걱정하는 마음이었을 거라고 그저 짐작해본다. 엄한 부모님이라는 점에서 어머니의 어린 시절에 나의 어린 시절을 투영하기도 했지만 나는 그보다 자유로웠고 지금은 더 자유롭다. 그래서 문득 이제야 어머니가 만약 21세기에 태어나 살아간다면 어떤 모습일지 궁금하다. 더 많은 선택의 기회들이 있을 텐데 어머니는 과연 어떤 선택을 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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