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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정 Mar 18. 2022

10년을 미룬 약속 지키기

59000원짜리 뷔페가 뭐라고

거의 10년 전, 내가 대학교를 다녔던 그때에 딸기 뷔페 붐이 일었다. 딸기 밖에 없는데 저렇게 비싸다고? 하는 생각과 온통 딸기라니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반반씩 들었던 기억이 난다. 또 하나 내 기억이 맞다면 어머니도 딸기 뷔페에 흥미를 보이셨다. 대학생이었던 나는 아르바이트를 해서 생활비를 벌어 쓸 때였고 하루 한 끼 식사 가격으로 딸기 뷔페의 가격이 꽤 부담스러웠다. 그러니 "내가 더 크면 데리고 갈게!" 하며 미뤄둘 수밖에 없었다. 미뤄두고 잊히니 벌써 2022년이었다. 올해 초에 어머니랑 밥을 먹고 디저트로 딸기를 먹으면서 딸기 뷔페 이야기가 나왔다. 여전히 어머니는 궁금해하셨고 나는 10년 전 내가 했던 말의 무게를 이제야 느끼게 되었다.


먼저 검색을 해봤다. 부산 딸기 뷔페를 치니 서면 롯데호텔에서 1월부터 3월까지 주말 동안 '2022 Strawberry Picnic'으로 딸기 뷔페를 운영하는 걸 찾을 수 있었다. 딸기가 나오는 1월 초에 검색을 하였는데 2월 중순까지 예약이 이미 차있었다. 누구보다 빠른 한국 사람들이라고 생각이 들었지만 나는 바로 예약하지 못했다. 가격이 부담스러워서 마음의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 그렇게 창을 닫고 일상을 지내면서 문득문득 생각이 났다. 언제고 미룰 건지 스스로에게 의문이 들었다. 물론 한 끼에 59000원이라는 금액은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지출이긴 했지만 10년 전이든 지금이든 아마 앞으로도 내 주머니 사정이 어떻든 한 끼에 이 정도를 결제할 때면 떨리는 건 변함없을 것 같았다.


그러니 그냥 예약해버려야지 싶었다. 미루고 잊혀서 10년이나 지났는데 지금이 아니면 언제 또 가보겠어하는 결심도 섰다. 마음을 먹으니 이미 2월은 예약이 꽉 찼고 3월로 넘어가야 했다. 아직 1월이 끝나지 않았는데 말이다. 이런저런 날짜를 고민하여 예약을 하고는 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운을 띄우기 조금 쑥스러웠다. 어머니가 저번에 딸기 뷔페 가보고 싶다고 했잖아요. 그래서 제가 예약했어요. 3월에 가요. 하고 담담하게 전달했으면 좋았을 텐데 횡설수설, 말이 정신없이 튀어나왔다. 갑작스러운 약속에 어머니도 놀라신 것 같았지만 그렇게 한 달도 전부터 어머니와의 데이트 약속을 잡았다.




시간이 흘러 약속 당일, 롯데 호텔로 향했다. 서면을 많이 나갔어도 호텔은 갈 일이 없었으니 익숙하다가도 낯선 길이었다. 설레는 마음을 가지고 도착하고 보니 시간이 너무 여유로웠다. 바로 옆의 베이커리에 들어가서 딸기 디저트를 구경하고 뷔페 앞의 포토존에서 어머니와 언니와 사진도 잔뜩 찍었다. 나도 그렇지만 우리 모두 조금씩 들떴다는 게 느껴졌다. 비 오는 날이었지만 날씨도 우리의 즐거움을 방해하진 못했다. 뷔페에 들어가서 보니 정말로 딸기 천국이었다. 딸기 마카롱, 딸기 티라미수처럼 흔히 볼 수 있는 디저트부터 딸기 피자, 딸기 크림새우처럼 아주 낯선 음식도 있었다. 사진도 찍을 겸 한 바퀴를 돌았는데 어머니가 신기해하고 좋아하는 모습에 기분이 너무 좋았다. 딸기 색 니트를 입은 어머니의 모습이 아주 소녀 같았다.




맛있는 건 같이 먹어야 제 맛이고 좋은 건 나눠야 두 배가 된다는 당연한 진리를 또 한 번 느낀 날이었다. 예쁘게 꾸며진 공간에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함께 감탄하고 즐거워하는 순간이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나는 10년이나 미뤄진 약속을 지킬 수 있어서 행복했다. 이번 데이트에는 앞으로의 인터뷰를 위한 뇌물이라는 이유를 붙였는데 앞으로 특별한 이유가 없더라도 종종 이렇게 밖에서 어머니와 데이트를 해야겠다. 가족들과 함께 할 수 있을 때 작은 후회라도 남기지 말자는 결심을 다시 다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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