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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Mar 30. 2016

단청, 스테인드 글라스

유럽을 여행하며 빠지지 않고 들리는 곳 중 하나가 성당이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을 비롯해 방문한 도시의 대표적인 성당에서 보았던 스테인드 글라스들은 빛과 어울려 아름다웠다. 오래 두고 보고 싶어 사진에 담는 사람들이 많았고 나 역시 사진을 찍었다. 그러나 사진은 실제 현지에서 느낄 수 있었던 아우라를 담고 있지 못해 아쉽다. 2% 부족하다. 사진을 보고 아쉬울 때마다 눈을 감고 상상한다. 어두운 천정에 그려진 그림들과 벽에 서 있는 조각상들을 은은하게 밝혀주는 스테인드 글라스를 통과한 빛줄기가 어둠을 배경으로 선명하다. 그 빛 아래 예수와 마리아상, 침묵으로 기도하는 사람, 조용히 발걸음을 움직이는 관광객들, 어둑함과 술렁임 속에서 유지되던 조용함이 만들어 낸 근엄한 분위기의 느낌까지를 불러내어 더해야만 그나마 사진으로 못 메꾼 부족함을 채울 수 있다. 스테인드 글라스로 그려내 모습은 그 자체로 전경이자 배경이었다.


유럽에 스테인드 글라스가 있다면 우리에겐 단청이 있다. 우리나라에 여행 온 외국인과 이야기해 보면 단청이 정말 아름답다고 감탄한다. 노랑머리를 뒤로 젖히고 파란 눈으로 찬찬히 살펴보다가 사진을 찍는다. 우리는 우리가 지닌 아름다움을 너무나 당연시하면서 모르고 지내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본다.


일요일 오후, 아들을 서울로 올라가는 기차에 태워 보내고, 시골의 한적한 절을 방문했다. 처마의 단청이 예뻤다. 얼마나 많은 붓놀림이 있었을까? 이 고을 저 고을 여러 곳의 절들을 방문하면서 본 단청들은 제각기 다른 특징을 갖고 있었다.


단청은 오행사상의 기본색인 흑, 백, 청, 황, 적의 오방색, 다섯 가지 색을 배합해서 그린다. 스테인드 글라스는 조각 난 색유리로 모양을 만들어 내고 창문에 붙여서 채광과 장식을 하는 기능을 한다.

우리는 창살에 반투명 창호지를 붙여 채광을 하고 바람을 막는다. 창호지 사이에 단풍잎이나 꽃을 넣어 멋을 부리기도 하지만, 우리의 건축물에서 진짜 멋을 내는 곳은 처마와 기둥이다. 나무로 된 처마와 기둥에 안료를 이용해 그려지는 단청은 벌레와 비바람으로부터 나무를 보호하는 기능을 겸한다.


서양의 스테인드 글라스는 자신의 주관에 따라 빛을 다른 색의 빛으로 만들어 투과시키고 굴절시키는 변화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낸다. 그러나 우리의 단청은 있는 그대로 빛을 흡수하거나 반사를 할 뿐 빛의 변화를 시도하지는 않는다.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개인과 인위적인 것을 중시하는 서양인과 모두를 덮는 지붕으로 표현되는 우리와 자연을 중시하는 동양인의 다름이 드러나는 대목이다.


단청을 만드는 과정은 이렇다. 먼저 종이 위에 그리고 싶은 문양을 그리고, 문양을 따라 바늘로 구멍을 낸 종이를 나무에 대고 하얀 가루분이 든 주머니로 두드려 나무에 문양의 자국을 남긴다. 종이를 떼어내고 하얀 자국으로 남겨진 줄을 따라 여러 색의 붓을 이용해 문양의 외곽선을 그리고 색을 채워 넣는다. 전체적인 그림이 완성되면 검은색 붓으로 마감선을 그려내어 완성한다. 그려 넣는 문양에는 제 각기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이렇게 손이 많이 가서야 완성이 되는 단청의 종류는 가장 화려한 금 단청 - 모로 단청 - 긋기단청 - 무늬 없이 한 색상으로 그려내는 가칠 단청이 있다. 어떤 단청을 선택하느냐는 건물의 용도나 격에 따라 선택한다. 일반 살림집은 단청을 하지 못하도록 법에 규정이 되어 있었다고 하니, 단청은 예로부터도 특별한 의미를 지녔던 것이다.


절의 이곳저곳을 구경하며 다니다가 찻집에 들어앉았다. 아름다운 단청이 그려진 처마 밑으로 사람이 들어 다닐 만큼 큼지막한 창호지 바른 창이 있다. 그 열린 창으로 봄이 오고 있는 건너편 산을 바라보며 차를 마시는 아내의 여유로운 뒷모습이 예쁘다.
바쁜 일상을 접고 아내와 마주 보고 앉아, 조용하게 들려오는 절의 음악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보다가 단청의 문양들을 눈으로 따라 그려 본다. 한참을 문양 하나하나를 음미하고 있는데, 산을 바라보던 아내가 시작한 말에 붙들려 현실로 돌아왔다. 우리 인생 또한 각자 자신의 문양을 새겨 넣는 단청을 완성해 나가는 과정이 아닐까? 아름다운 인생을 그려가는 다섯 가지 오방색은 가족, 친구, 사랑, 행복, 우정일 것 같다. 우리 부부가 함께 그려갈 남은 삶의 문양에 대하여 아내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니 그 또한 좋다.


이야기가 끊기고 다시 조용히 건너편 산을 바라다보는 여백의 미를 찾는 것도 참 멋스럽다. 격자 나무 창살이 그려 놓은 네모난 사각형의 개수를 세는 것도 재미있다. 눈을 감으니 열어 놓은 창문을 통해 청량한 바람이 불어온다. 바람따라 스멀스멀 창문을 넘어 들어온 단청의 꽃과 나뭇잎, 구름무늬와 곧거나 휘어진 선의 문양들이 머리카락에 바람 문양을 남기고 흩어진다. 붉고 노란 황혼 빛도 긴 그림자를 창문 넘어 내게 드리운다. 나는 그렇게 단청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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