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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Apr 21. 2016

화순 영벽정

화순 영벽정, 중학교 2학년 때 전남 보이스카웃 연맹에서 주관한 2박 3일 캠핑에 참석해서 처음 갔던 곳이다.
텐트, 알코올버너, 코펠 등 변변한 캠핑도구가 없어서 텐트는 선배에게서 빌리고, 알코올버너를 대신해 집에서 사용하는 석유곤로를 보자기에 싸고, 코펠 대신 집에서 사용하던 밥그릇과 국그릇 그리고 냄비를 챙기니 배낭과 양 손에 들 것이 가득했었다. 그 많은 짐을 혼자서 이고 지고 남광주역에 도착했고, 화순 영벽정 근처에서 정차하는 완행 기차를 탔던 기억이 나뭇가지를 뚫고 올라오는 연한 녹색의 새싹처럼 돋는다. 한적한 시골역인 능주역에 내리니 광주 전남에서 온 보이스카웃 대원들이 모여 있었다. 학교와 동네밖에 모르던 도시 촌놈이 학교 친구 말고 여러 곳에서 온 많은 중학생들을 보면서 머쓱해 있는데 우리 학교 학생들이 보여 무지 반가웠다. 능주역에서 인원점검을 마치고, 들고 온 짐과 함께 논둑길을 따라 영벽정으로 걸어갔다. 걸어가는 내 모습을 먼 곳에서 봤다면 사람이 아니라 짐 덩어리가 움직이는 것처럼 보였을 터다. 담요 대신 이불까지 가져간 나였으니까.


선생님을 보이스카웃 대장님이라 불러야 한다는 것도 그곳에서 처음 알았다. 학교별로 텐트를 칠 장소를 배정받아 텐트를 세워야 했다. 태어나 처음 해보는 것이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몰라 눈만 멀뚱멀뚱 다른 사람이 하는 걸 보고 있는 나를 선생님, 아니 대장님이 오셔서 도와주었었다. 학교에서는 선생님 심부름만 하기 바빴었는데 도와주시는 것이 고맙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했었다. 텐트를 치고 짐 정리 후 다시 모여서 단체 게임과 개인 과제를 하다 보니 해가 서산에 걸렸다. 바삐 저녁식사를 준비했다.

밥? 어머니께서 해주시던 밥만 먹다가 냄비에 처음 해보는 밥이었다. 출발하기 전에 어머니께 밥하는 하는 요령을 배워오기는 했지만 처음해 보는 초보가 제대로 할 수 있었겠는가? 당연히 삼층밥이었다. 맨 밑은 새까맣게 타고, 맨 위는 밥이 되다 말아서 서걱서걱 쌀이 씹히는 씹는 맛까지 느낄 수 있는 밥이었다. 그래도 가운데 부분은 집에서 먹었던 밥과 같아서 가져간 김치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얼마나 대단한가? 한 냄비에 3층으로 밥을 짓고, 씹히는 맛까지 겸한 밥을 창조해 내었으니…. 그때를 생각하는 지금도 코끝을 맴도는 밥 탄 냄새와 신 김치냄새에 군침이 꿀떡 넘어간다.

국은 또 어떻고? 아들이 칼로 손을 벨까 염려되어 어머니께서 미리 잘라서 준비해주신 무와 호박을 냄비에 넣고, 된장 두 숟가락을 풀어 휘휘 저어놓았다. 냄비 뚜껑을 닫고 기다리다가 나중에서야 멸치도 넣어야 더 맛있다는 어머니의 말씀이 생각나서 뒤늦게 멸치를 넣고 끓였던 국이었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뜨거운 국물 속에서도 멸치가 헤엄치는 듯 둥둥 떠 있는 국이었지만 그래도 밥 한 그릇 뚝딱 말아먹을 수 있었던 맛있는 기억이 난다.  영벽정 옆을 흐르던 지석천에서 수영을 배울 때는 또 어땠는지? 팔다리를 젓다가 머리를 내밀어 숨을 내쉬고 숨을 들이마셔야 하는데, 그게 맘대로 안 되었다. 번번이 숨 대신 물을 들이마시면 헤엄치다 말고 땅 짚고 일어 서서 매운 코를 쥐고 캑캑거리던 내 모습은 강가에 드리운 나뭇가지 같았을 것이다.


이제 와서 생각해보니 넉넉하지도 않은 가정 살림 속에서도 어렵게 돈을 마련하여 캠핑 경비를 대주셨을 부모님 생각이 난다. 그때는 보내주신 부모님께 감사의 말도 안 드렸을 것이다. 멋대가리라고는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도 없고 숫기마저 없었던 나인지라 그저 '다녀오겠습니다.' 하고 인사나 하고 말았으리라. 그나저나 집에서 밥을 해 먹던 석유곤로를 아들이 가져가 버렸으니, 부모님 식사는 어떻게 해 드셨는지? 이제야 궁금하다.


상담심리학을 배우면서 애착, 양육환경 등 어린 시절의 성장과정을 되돌아보게 되는 때가 많다.
그럴 때마다 느끼는 것은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 이제야 느끼는 뒤늦은 죄송스러움... 그런 것들이다.
눈을 감든 뜬채로든 어린 시절이 아련히 떠오른다. 때론 희미하고 때론 또렷한 사진들이 화면을 훑고 지나가는 슬라이드처럼 깜빡거리면 흘러간다. 손을 뻗어 잡으면 손에 잡힐 듯하다가도 그냥 지나가버리는 허상 속 어린 시절로 되돌아갈 수 없어서 몹시 아쉬울 뿐이다. 더불어 아픈 기억 하나 떠 올리지 못 할 만큼 잘 해 주셨던 부모님의 사랑이 지금도 새롭다.

내가 부모님에게서 넘치도록 받은 사랑을 내 아이가 이어받는 모양이다.
지난번에 집에 왔던 아들이 "나는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지금 엄마 아빠처럼 잘할 수 없을 것 같아."라고 했던 말이 고맙고도 부끄러웠다. 부모로서 더 잘해주지 못해서 늘쌍 미안하기만 한데...
우리 부부에게 늘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말해주는 내 아들에 비해서, 나는 부모님께 그런 말도 못 해 보았으니 아들에게서 배워야 하는 나는 못난 부모임에 틀림이 없다. 오늘 저녁엔 부모님께 감사하다고, 사랑한다고 말하는 아들을 닮아봐야겠다.


물이 오르기 시작하는 나뭇가지를 꺾으면 피어나는 풋풋한 향기처럼 풋내 났을 나의 중학교 시절은 영벽정 곁을 흐르는 강물 따라 그렇게 흘러가 버렸다. 그러나 추억 속에서만큼은 언제고 그 푸르고 푸르던 시절로 되돌아 갈 수 있으니 추억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또 그런 추억을 불러일으키는 시간을 잊은 체 서 있는 영벽정은 또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우리 주위의 모든 것들이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추억 속으로 되돌아갈 수 있도록 한 자락 깔아주고 있으려니 하는 생각에 자연의 모든 것들이 고맙고 또 사랑스럽다.


제법 굵은 빗줄기가 쏟아지는 창 밖을 보면서 튀어 오르는 빗방울 따라 올라오는 흙냄새를 오래도록 맡아보며 음미해 본다. 아...! 영벽정 텐트에 누워서 맡던 흙과 풀의 그 냄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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