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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Apr 16. 2017

앎을 두지 않는 겸손, 문빈정사를 찾아서

무등 너머로 사뿐사뿐 봄이 오는 길목.

무등산 계곡을 따라 흐르는 물소리도 활기를 찾 졸졸거리고,

아침저녁으론 서늘한 기운이 여린 나뭇잎을 덜덜 떨게 하지만, 낮에는 엄마 품속처럼 따듯하게 보듬어 주는 햇빛에 눈이 부신 무산행 길.

봄조차도 아직 절정에 이르지 않았건만 알록달록 붉고, 노란 사람들의 등산복에선 가을이 벌써 와 버렸다.

사람들이 그러건 말건,

들판 개나리는 귀여운 유치원 아이들의 단복처럼 노랗게,

매화는 살짝 상기된 님의 보드란 볼처럼,

달래 꽃은 수줍은 님의 보송보송한 솜털처럼 하얗게 피다.

한자리에서 수 억년을 지켜낸 산을 앞에 둔 사람의 발걸음이  그리 바쁠  필요가 있을까?

매서운 겨울을 이겨꽃들이 오는 봄 즐기라고 길가에서 손짓하는데, 사람들은 이야기 꽃만 피우며 걸음을 재촉한다.


잠시 쉬어가며 문빈정사를 살펴본다.

무등산으로 오르는 길목에서 맨 처음 만날 수 있는 절이 문빈정사(文彬精舍)다.

논어에서 공자가 이르기를

'질승문즉야 문승질즉사 문질빈빈 연후군자(質勝文則野 文勝質則史 文質彬彬 然後君子)'라 했다.

풀이하면, '본바탕이 꾸밈을 이기면 촌스러우며, 꾸밈이 본바탕을 이기면 겉만 호화롭다. 꾸밈과 바탕이 조화를 이룬 뒤에야 군자다.'라는 뜻이다. 즉, 사람의 안팎이 함께 닦여 빛나야 한다는 말이다.

절의 이름 문빈(文彬)은 이러한 뜻에서 연유한다.

그러니 겉만 화려한 절이나, 덩그러니 투박하기만 절을 찾아가기 보다야, 적절하게 겉모양도 속 내용도 꾸민 절을 어찌 그냥 지나칠 수 있겠는가?

문빈의 뒤에 붙은 정사(精舍)는 석가모니가 기거하던 곳을 뜻하는 범어를 한자로 읽은 단어 불교에서는 절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유림에서는 선비들이 후학을 가르치는 학사나 정신을 수양하는 곳이라는 뜻으로 쓰이는 단어다.


문빈정사의 이름에 얽힌 또 하나의 이야기.

옛날 무등산에는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암자가 있었다. 무당 골이라 불리 울만큼…….

계곡에서는 날마다 굿판이 벌어졌다.

어느 날 여인의 꿈속에 증심사 아래 초가집 한 채가 보였다. 방문을 열어보니 방안 가득 염주가 있었다. 다음 날 꿈에서 깬 여인은 꿈에서 본 증심사 아래를 찾아갔더니 꿈에서 보았던 초가집 한 재가 정말 있었다. 가가 방문을 여니 염주가 방안에 가득하였다. 이러한 사연을 이야기하는 여인에게 스님이 “초가집이 있는 곳에 절을 지으면 나라와 사람들에게 좋은 일이 있을 것이다.”라고 답을 하였다. 여인은 스님 말대로 자신의 재산을 털어 절을 짓고, 문빈정사라 하였다. 이야기 속의 여인평양에서 홀로 월남하여 광주 금남로에서 사업을 해 재산을 모았으나, 외동딸을 잃어 혈육이 끊어지자 불교에 입문한 장문빈(張文彬) 보살이다.

자신도 가족도 아닌 나라와 국민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 절을 지은 여인의 마음이 아름답게 빛나지 않는가? 그래서 더욱 문빈정사다.


불교에서 '무등(無等)'이란 부처님을 뜻한다. 문빈정사는 부처님의 산에 있는 첫 절인만큼 의미가 깊다. 무등산을 방문하려는 사람들은 그냥 가벼이 지나칠 곳이 아니다. 굳이 시간을 내어서라도 들봐야 할 곳이다.

로 들어서는 입구 왼편에 문빈정사의 의미와 역사를 설명하는 안내문이 서있다.

1959년 4월에 터를 매입하고 공사를 시작하여 1961년 음력 8월 대웅전이 낙성되었으니 올해로 55년이 넘은 절이다.

2013년 12월 24일에는 문빈정사에서 소장하고 있는 11종 12 책의 고문서가 광주 유형 문화재로 제 29호 지정되었다. 이 고문서는 불교서적 11종 12 책이다. 한 권을 제외하고 간행연도에 대한 기록이 남아있으니 주로 임진왜란 전에 발간한 판본들이다. ‘법계성범수륙승회주재의궤’와 ‘천지양명수륙재의찬요’는 국내에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판본이어서 중요성을 지닌다. 사찰의 경전 간행 활동 및 불교 의식의 정립 과정 등을 파악할 수 있는 자료로서 불교미술사적  가치도 있다.

문빈정사를 지켜온 스님들의 이력이 적혀 있는 오른편에는 문빈정사의 또 다른 의미가 안내되어있다.

문빈정사와 민족민주운동이라는 글에서는 민주화와 불교 자주화에 노력한 이력이 소개되어 있고, 문빈정사의 성보라는 글에서는 조선시대의 불서와 경전과 선암사와 대흥사에 이어 세 번째로 오래된 감로도가 문빈정사에 있음을 그림과 함께 소개하고 있다. 추사 김정희와 같은 명필들이 쓴 현판과 주련도 있다고 하니 절에 들어서기도 전에 기대가 된다.

몇 계단 올라 절로 들어가는 문 위에는 등지문(等持門)이라는 편액과 문빈정사(文彬精舍)라는 편액이 걸려 있다.

문에 들어서서 뒤를 돌아 다시 문을 보면 일주문(一柱門)이라는 편액이 또 걸려 있다. 일주문이란 편액은 서예가인 송곡(松谷) 안규동(安圭東)의 작품이다. 문빈정사에 들어서기 전 앞뜰에는 안규동 선생의 기적비가 서있다.

문빈정사로 들어서는 등지문 좌우 기둥에는 ‘입차문래 막존지해(入此門內 莫存知解)’라는 주련이 쓰여 있다.

해석하면 ‘이 문 안으로 들어서면 깨달아서 앎을 두지 말라’이다. 컵이 비어 있어야 새로운 물을 채울 수 있듯이 문빈정사에 들어서면 자신이 알고 있던 것을 비워서 새로 배우고 깨달으라는 뜻이다.

일주문을 들어서면 제일 먼저 만나는 것은 팔각정 모양의 건물이다. 일로향각(一爐香閣)이라는 편액과 상락정(常樂停)이라는 편액이 두 개 걸려있다. 안내소 겸 종무소로 쓰이는 곳이다. 팔각정 지붕은 청기와로 되어 있으며 중앙에는 2층으로 된 탑이 서있다.

팔각정 기둥에 ‘유화유월유루대(有花有月有樓臺) 꽃과 달이 있고 누대가 있다’는 내용의 주련이 눈에 띈다.

그래! 꽃이 피고 달도 핀 밤, 뜰에 나와 누각을 보면 상락정도 팔각 모양으로 피어난 꽃으로 보이려니 하는 생각이 들었다. 햇빛이 눈부신 낮에 달이 뜬 밤을 상상하는 즐거움을 뉘라서 알까?

상락정을 지나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에는 연꽃이 활짝 피었다. 사시사철 지지 않는 꽃이니 극락에 핀 연꽃과 다름 아니겠는가? 인간의 손끝에서 피워낸 연꽃을 찬찬히 바라보노라니 연꽃의 은은한 향기가 코끝을 감돈다.

대웅전으로 오르는 계단 중앙에는 연꽃받침의 석등이 있고, 오른쪽에는 5층 석탑이 있다.

대웅전의 여섯 기둥에 나뉘어 쓰인 주련 내용을 살펴보았다.

불신보편제대회(佛身普遍諸大會) 충만법계무궁진(充滿法界無窮盡)

적멸무성불가취(寂滅無性不可取) 위구세간위출현(爲救世間爲出現)

기중중생불가량(其中衆生不可量) 현대신통실조복(現大神通悉調伏)

부처님의 법이 충만해서 세상의 중생을 구한다는 내용의 글이다.

극락전(極樂殿)은 현재 납골당으로 쓰이고 있다. 극락세계의 아미타 부처님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신 분들의 극락왕생을 비는 마음이 모여 있는 곳이다. 극락전에 납골을 봉안한 뜻은 삶과 죽음이 하나라는 가르침은 아닐까?

극락전 앞뜰에는 연못이 있고, 연 주변에는 기묘한 모양의 바위들이 있다. 그냥 바위라기에는 모양이 특이하다. 자연이 빚어 놓은 조각이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뒤에서 보면 거북이 서 있는 것 같고, 앞에서 보면 참선을 하고 있는 수도승 같기도 한 바위다.

부처를 따르던 16명의 뛰어난 제자들을 '16 나한' 이라 부르는데 이를 모시는 나한전(羅漢殿)이 소담하게 예쁘다. 나한전 앞의 작은 소나무가 몸을 뒤틀어 분재의 모양을 하고 있어 더 아름답다.

1층에 범종이 있고 2층에 목어, 운판, 법고가 마련된 범종루(梵鐘樓)에선 세상의 모든 생명 있는 것들을 기억하며, 살생을 금하는 불교의 엄숙함이 묻어난다. 땅을 기어 다니는 벌레 한 마리의 생명조차 귀히 여기는 소중한 기원이 새벽마다 소리로 울려 퍼지는 공간이다. 숙연해마음으로 범종루에 쓰인 '원차종성편법계(願此鐘聲遍法界)' 주련 글의 뜻처럼 종소리가 세상에 두루 퍼지기를 바라며 합장해본다.

너무 화려하지도 초라하지도 않으면서도 빛나는 문빈정사를 떠나 다시 무등산으로 향하는 길, 싸목싸목 걷는다. 빈정사 입구에 들어서며 이것저것 복잡했던 생각을 비우고 배운 ‘깨달아서 앎을 두지 말라’라는 글을 다시 되새겨본다. 겸손하게 살아야지.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문빈정사 입구, 오지호 화백의 기적비

<문빈정사 찾아가는 길>

광주 시내에서 무등산국립공원(증심사)행 시내버스를 타고 종점에서 내려서 무등산 방향으로 걸어서 10분, 550m 거리에 있다.

시내버스 : 수완12,49, 운림35,50,51,54, 봉선76, 좌석02, 첨단09

지하철 : 학동 증심사입구역에서 내린다. 걷기에는 좀 먼 거리 3Km이므로 시내버스로 갈아타는 것이 좋다.

승용차 : 시내버스 정류장 근처 주차장을 이용

음식점 : 시내버스 종점에서 증심사지구 탐방안내센터까지 가는 길목에 식당 거리가 조성되어 있다. 등산용품을 파는 상점도 여러 곳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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