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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Aug 18. 2017

하바롭스크 1일 - 소련, 페레스트로이카의 러시아


2017년 8월 12일 토요일 오전 11시 에 인천공항을 출발하는 스타 얼라이언스 비행기를 탔는데 승무원은 아시아나 소속이다. 덕분에 우리말을 사용할 수 있어서 편하다. 내가 예상했던 비행경로는 우리나라를 횡단한 후 동해로 빠져나가 러시아로 향하는 줄로 알았다. 그러나 실제 비행기는 서해로 빠져나가 북한을 우회해서 중국 다롄 지역 상공에서 러시아 쪽으로 향했다. 통일이 된다면 북한을 횡단해서 더 빨리 갈 수 있을 것이다.

비행기가 하바롭스크 공항에 부드럽게 착륙하니 승객들이 박수를 친다. 무사히 땅에 내렸음을 축하하고, 수고한 비행 승무원에 대한 감사와 격려의 박수다. 내 생명의 끈이 끊어지지 않고 이어 나감을 의미하기도 한다.


비행기 트랩 계단에 발을 내디뎌 처음 마셔보는 러시아의 공기가 시원하다. 트랩에서 내려와 발을 뻗어 내디딘 땅은 똑같이 먼지 날리고 딱딱한 땅이다. 그러나 옛날 냉전시대에 소련은 우리와 적대관계 국가였다. 소련에 갔다 왔다면 간첩으로 몰릴 수 있는 시절이 있었다. 그 시절이었다면 러시아를 우리와 같은 한국 일반시민이 밟을 수나 있었겠는가? 세월이 흘러 이제 우리나라 시민은 러시아에 무비자 입국이다. 오히려 미국을 다녀와서 여권에 미국 입출국 스탬프가 찍힌 아들이 걱정한다. 세상 많이 달라졌다. 이런 생각과 함께 러시아 땅을 밟으며 공항 입국장 건물까지 걸어갔다.

 

입국장에서 긴 줄이 좀처럼 줄어들지 않는다. 뭐든 빨리빨리 하는 우리나라에 완벽하게 적응된 우리 일행들이 보기에 답답하다. 외국여행을 하다 보면 나라별로도 다르고, 입국 창구 어느 줄에 서느냐에 따라서도 다르다. 유독 우리 줄이 느렸다.

단 한 단어도 의미를 알 수 없는 러시아 글자만 있을 뿐, 영어 단어는 없다. 중국어 안내는 있다. 우리가 배운 한자와 닮았으나 간자체라 알아보지 못하는 단어도 있다. 그래도 중국어 안내판은 러시아어보다 도움이 된다. 러시아어는 뭐라 적어졌는지 짐작조차 하지 못한다. 그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는 곳에 꼬리를 물고 우리도 섰다. 우리나라 중고등학교 영어교육이 잘못되다고 비판을 하지만, 그래도 영어단어를 보면 이해가 되니 완전히 제로인 영어 교육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공군에서 미군과의 연락장교로 근무하면서 배우고 익힌 영어 실력이 아직 조금은 살아 있는 덕분이기도 하다. 러시아어로만 된 안내문들을 보면서 '국제공항이 맞나?' 싶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짐을 찾았다. 공항을 이용하는 사람이 적으니 짐도 그리 많지 않아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공항 로비로 나서니 하바롭스크 국제공항이 우리나라 지방 공항보다 못하다. 흡사 시골 버스정류장 같은 모습이다. 하바롭스크가 러시아의 최동단 지역의 수도임에도 그렇다. 공항 로비에서 문 밖으로 한 발자국만 나가도, 나간 문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막는다. 문을 나선 사람은 검색대가 있는 문으로 들어와서 가방과 몸을 검사받아야 한다.


공항 건물을 벗어나, 시내로 들어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우리나라 대우  상표를 단 버스가 멈춰 섰다 간다. 많이 낡은 버스인 걸 보니 중고차로 수입되어  운행되는 중으로 추측된다. 우리 일행이 탈 버스는 레닌광장까지 가는 1번 버스다. 전철처럼 공중에 매달린 전선으로부터 에너지를 공급받아 전동모터로 바퀴를 굴려 가는 전기 버스다. 우리를 태우러 온 1번 버스 역시 낡았다. '움직일까?' 싶을 정도였다. 러시아는 자본주의 경제가 스며들고 있지만 아직도 낡은 공산주의 체제를 유지하고 있는 국가다. 덜커덩거리고 쿵쾅거리며 가는 버스 속에서, '어쩌면 러시아 정치체제가 이런 모습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각을 듣던 누나가 한 마디 거든다. 10여 년 전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누나가 선물을 사려고 물건을 보며 고르고 있는데 퇴근 시간이 되었으니 나가라고 했단다. 페레스트로이카( Perestroika)로 사회주의 체제를 유지하면서 국가 소유, 협동조합 소유, 개인 소유 등으로 소유를 세분화하고 개인 소유권을 인정하는 변화가 있었고, 세월이 흘렀으니 지금은 달라졌겠지? 그러길 기대해본다.


시내버스엔 차장이 있다. 옛날 우리나라 시내버스에도 차장이 있었고, 토큰이나 버스표를 받았다. 하지만 하바롭스크에서는 차장이 작은 두루마리 화장지처럼 둥글게 말린 버스표를 목에 걸고 새로 승차한 승객에게 다가와 목에 매단 버스표 두루마리에서 버스표를 한 장 끊어서 주고 30 루블을 받아간다.  


20분쯤 걸려 레닌 광장 인근 버스정류장에서 내렸다. 10명이 옆이나 뒤에 작은 가방을 메고 큰  캐리어 가방 7개를 끌고 가니 캐리어 가방의 바퀴가 고르지 못한 길 위를  굴러가며 눈치 없이 '드르륵' 소리를 낸다. 이런 모습이 러시아 사람이라도 눈길을 사로잡을 텐데, 더구나 한국사람이니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은 아닐터다. 마주 오거나 길에 서 있던 러시아인들이 우리를 본다. 우리도 당연히 러시아인들을 본다. 서로가 서로의 구경거리가 되어 구경을 하는 것이다.


공원 숲을 지나 호텔에 도착해 짐을 풀고, 이번엔 작은 가방을 메고 다시 공원을 지나 레닌광장으로 갔다.

레닌광장에 분수 물이 치솟고, 비둘기가 날아오른다.  백여 마리의 비둘기보다 적은 수의 사람 숫자에 우리가 10을 더했다. 웨딩 촬영을 하는지 웨딩드레스를 입은 신부와 신랑이 사진사의 지시에 따라 분주히 움직이면서도 미소가 가득하다. 좋을 때다. 우리에게도 저런 때가  있?..., 아니 없었다. 우리 결혼하던 시절엔 웨딩  촬영이란 개념 자체가 없었다. 결혼식장에서 촬영하는 사진이 전부였다. 그래서 불행하냐고? 아니 행복하게 잘 산다.

결혼 생활은 결혼하기 전의 사진 촬영이 아니라, 결혼 후 마음 맞추어 사는 데 있기 때문이다.


레닌광장에서 구경을  마치고, 중심거리인  무라비요프 아무르스키를 지나며 러시아  특성을 담은 건물들을 구경하며 콤소몰 광장까지 갔다. 하바롭스크와 블라디보스톡이 우리나라에서 두~세 시간 만에 가는 서양이라고는 하지만, 작년에 갔던 유럽의 건물과는 차이가 난다. 그때의 기억이 있어서인지 그리 새로울 것은 없지만 그래도 우리 건축물과 다른 면이 있어서 나름 괜찮다. 콤소몰 광장에는 파란색 지붕의 정교회와 기념비가 서 있었다. 밤의 아무르 강변에 섰다. 시간이 밤 8시를 넘었는데도 강변 기슭에는 태양 빛이 서려있다. 내일 날이 밝으면 아무르강에서 유람선을 탈 예정이다. 호텔로 되돌아오는 길에 큰 마트에 들렸다. 우리나라 사발면이 72 루블 우리 돈으로 1440원이다. 우리나라와 가격차이가 크지 않으니 가져갈 짐이 많다면 우리나라에서부터 사발면을 사 가지고 갈 필요는 없다. 레닌광장 분수 여러 색의 전등이 켜져 더 아름다운 분수가 되어있다.


저녁식사로 스테이크를 먹는데 사진 찍는 것을 자꾸 잊는다. 촬영을 해두면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할 텐데...


내가 글을 쓰는 브런치 카페가 외국에서는 접속이 되지 않는다. 브런치 어플을 삭제하고 다시 설치해도 서버에 접속할 수 없다는 메시지만 나온다. 할 수 없이 메모장에 글을 쓴다. 하바롭스크와 블라디보스톡을 여행하면서 쓰는 글들은 우리나라에 돌아 가 메모장에서 복사해 브런치에 옮겨 붙이기로 했다. 놀던 물에서 놀아야 하는데 메모장에 글을 쓰려니 잘 써지지 않아서 불편하다. 내가 너무 예민한 탓이다. 아무데서나, 어느 곳에 나 구애받지 않고 글을 써야 하는데 아직은 그게 잘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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