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Oct 04. 2018

대구로 가는 버스에서, 그리고 대구 팸투어 1일째

오늘은 회사에 이틀간 휴가를 내고 광주시청 기자단으로 대구에 광주를 알리러 간다.

시청에서 대절한 리무진 버스를 타고 지리산을 오르락내리락하며 대구로 건너가는 길.

버스 안에서 도란도란 이야기할 상대가 없으니 귀에는 이어폰을 끼고, 가져온 책을 읽다  창밖을 보다 한다.

동시에 여러 가지를 하는 일에 약하다는 남자, 그러나 내가 유일하게 동시에 할 수 있는 음악 듣기와 책 읽기나 글 쓰기를 버스 속에서 즐긴다.

가져온 책은 엊그제 아들 집에 갔을 때 아들이 빌려준 '나를 위로하는 그림'.

글과 그림을 동시에 하는 작가가 그림과 연관된 이야기를 담담히 적어 놓은 글을 재미나게 밑 줄 쳐가며 읽으니 내 마음에도 그림이 그려진다. 부럽다. 글과 그림을 동시에 할 수 있는 작가의 능력이...

Roberta Flack이 부르는 The First Time Ever I Saw Your Face를 무한 반복으로 틀어 놓았더니, 보고 싶은 얼굴이 책 위로 차창 옆에 어린다. 잔잔한 그녀의 목소리와 노래 실력도 부럽다.

글에 집중할 때는 이어폰 타고 흐르는 음악이 배경으로 깔리고, 터널을 통과하거나 책을 건성건성 읽어도 되는 대목에서는 음악이 전경으로 다가온다.

책을 읽다 문득 멈추고, 책에서 작가의 글대로 내 콩깍지 속에 숨겨 놓은 상처들을 하나하나 꺼내 찬찬히 살펴본다.

겉으로 보기엔 행복이라는 푸른 콩깍지. 그러나 언제 콩깍지 안에 들어왔는지도 모를, 나만 아는 콩깍지 속 미움, 질투, 그리움, 외로움, 두려움, 상처들...

차창 넘어 누렇게 익어가는 벼 이삭 위로 햇빛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드는 가에 서러움을 꺼내 툭툭 털어 말려본다.


오랜만에 와 본 대구 수성못. 30년 전 수성못엔 그저 물만 가득하고, 규모도 지금만큼 크지 않았는데, 많이 커지고 볼거리도 많아졌다. 전엔 노 젓는 배도 있었던 것 같은데...? 아닌가? 30년의 세월이 나를 아득하게 한다.

대구에서도 비엔날레가 열리고 있다. 대구의 사진 비엔날레는 세계와 국내 사진작가들의 사진을 전시해 놓았다. 작품들을 보면서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촬영한 사진은 좋았다. 하지만 피사체에 인위적으로 조작을 한 후 사진은 고개를 갸우뚱하게 했다. 사진 촬영을 위해 피사체에 물감을 바르거나 하얀 가루를 뿌려 놓는 등 인위적인 흔적이 있는 사진에는 본능적으로 거부감이 일었다. 사진을 위한 사진, 출품을 위한 사진이라 느껴졌기 대문이다. 사진에 문외한인 나만의 생각은 이렇다. 사진은 빛의 예술이며, 시간의 예술이다. Here and now, 지금 여기 사실 그대로의 모습을  찰나의 순간으로 촬영해 현재의 시간을 미래에 사진을 보는 이들에게 과거의 모습으로 보여주는 작업이 사진 아니던가? 사진의 근본을 잊지 않았는지? 다른 사람들은 어떤지 몰라도 적어도 내 생각은 그렇다. 하지만 나는 안다. 내가 항상 옳지만은 않다는 것을..., 그러니 그냥 봐주고 넘어간다.

83 타워는 높았다. 77층 전망대까지 오르는 엘리베이터가 움직이는 느낌도 없이 빠르게 올랐다. "벌써  도착했다고?",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이구동성으로 한 말이다. 빠르게 오르는 엘리베이터에서 중력을 거부할 때 느껴지는 짧지만 불쾌한 느낌조차 없었다.  

서울보다는 작지만 광주보다는 큰 대구 전체의 모습을 보며  대구의 발전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멀리 팔공산도 보이고, 대구 공항도 보였다. 대구 공항은 공군비행장의 기능도 함께 하는 곳으로 내가 군에서 근무할 때는 K2라 불렀다. 물론 그때도 민간항공기가 이착륙을 하기는 했다.

케이블카를 타고 이월드로 이동했는데, 하늘을 가리며 펼쳐진 많은 색색의 우산도 아름다웠고 꽃들도 아름다웠다. 꽃은 언제 어디서 봐도 아름답다. 작은 꽃은 작은대로 큰 꽃은 큰대로 아름답다. 무리 지어 핀 꽃들의 아름다움은 더 컸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답다고 하는데, 정말 그럴까? 의심이 들 정도였다. 사람들도 무리 지으면 더 아름다워질까? 꽃은 꽃을 보는 사람마저도 아름답게 한다. 그래서 다들 꽃 앞에 서서 사진을 찍는다. 아름다운 꽃에 아름다운 사람이라니... 아름다움의 절정인 셈이다. 꽃 속에 있으며 생각하니 '꽃'이란 글자도 꽃처럼 예쁘다는 생각이 들었다. 참 우리 조상님들 이름도 잘 지었다.

'김광석 다시 그리기 길'은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길이었다. 작은 시장 길, 어쩌면 쓰레기가 뒹굴고 악취마저 풍겼을지도 모를 방천시장 어둔 골목길을 별의별 별 시장 프로젝트와 문전성시 프로젝트로 살려내고 지역에서 태어난 가수와 연계시킴으로써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효과를 보고 있었다. 광주에도 이런 곳을 만들면 어떨까? 광주에 가수 김정호와 어울리는 이름 모를 소녀의 길을 만든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들잎 따다가 연못 위에 띄어놓고 쓸쓸히 돌아서는 이름 모를 소녀...' 우수에 찬 김정호의 노래 말에 어울리는 길도 괜찮지 않겠는가? 광주 수창초등학교에서 김정호 추모 음악회가 열린 적이 있는데 이를 살려보는 것도 좋겠다.

대구 지하철 3호선은 하늘에 매달린 스카이 트레인이다. 지하를 달리지 않고 3층 높이의 고가철도 위를 달리므로 지하철이란 말은 어울리지 않는다. 도심 공간을 가르며 운행되기에 사람들이 생활하는 아파트 옆을 지날 때는 사생활 보호 차원에서 차창이 뿌였게 변하는 게 특이했다. 광주는 지하철 2호선 공사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놓고 찬성과 반대하는 의견들이 분분하다. 그래서 대구 3호선의 설치에 관심이 간다. 지하철을 전화와 비교하면 어떨까? 처음 전화가 들어올 때 한양에 설치된 전화가 몇 대 안될 때는 전화는 괜한 돈 낭비였을 것이다. 내가 사는 집에만 전화가 있고 정작 전화를 걸 곳이 없다면 무용지물이다. 하지만 점차로 전화가 늘어나고 필요한 때 언제든 연락할 수 있게 되면서 전화는 폭발적으로 늘어났고 그 유용함을 인정받았다. 하물며 지금은 개인마다 전화를 갖고 다니지 않는가? 지하철도 이와 같지 않을까? 광주 촌놈이 복잡한 서울이나 프랑스 파리나 어느 장소든 쉽고 빠르게 찾아다닐 수 있는 것은 열개도 넘는 지하철 노선 때문인 것처럼...

매거진의 이전글 공공 조형미술품에서 얻는 話頭와 思惟하는 삶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