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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Jan 16. 2019

도나우(다뉴브) 강에서 불렀던 노래 사의 찬미

도나우(다뉴브) 강은 유럽 중심 독일에서 시작해 서쪽에서 동쪽으로 여러 나라를 거쳐 흐르고 마침내 흑해로 흘러드는 유럽 제2의 강이다. 도나우 강은 독일 슈바르츠발트에서 브레크 강과 브리가흐 강이 합류함으로써 발원되고, 독일 남부를 지나 오스트리아 북부와 헝가리를 지나고 루마니아와 불가리아의 경계를 거쳐 루마니아 남동부를 지나 흑해로 들어간다. 철도가 없던 옛 시절 해상은 물류를 위한 주요 교통 요소였고, 증기기관으로 움직이는 배가 운항하면서 그 역할이 더 커졌다. 도나우 강의 역할도 유럽 역사에서 강의 길이만큼 길고 컸음을 짐작할 수 있다. 도나우 강의 길이는 2,858km로 강이 지나는 지역의 국가에 따라 부르는 이름이 조금씩 다르다. 영어로는 다뉴브(Danube), 독일어로는 도나우(Donau), 세르비아어와 불가리아어로는 두나브(Dunav),  헝가리어는 두너(Duna), 루마니 어로는 두너레아(Dunărea), 체코어로는 두나이(Dunaj), 러시아어로는 도나이(Donai)라고 부른다. 이러한 이름은 모두 라틴어 두나비우스(Dunavius)에서 나왔는데, 강의 옛 이름이 다누비우스(Danubius)인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도나우 강을 세르비아에서 처음 보았고, 헝가리에서는 직접 손을 담가 보기도 했다. 여행이 예기치 않은 일로 중단되어 오스트리아 비엔나까지 이어지진 못하지만, 오스트리아에 갔더라면 그곳에서도 도나우 강을 찾았을 것이다. 내가 도나우 강을 애타게 보고 싶어 했고, 손을 담가보려고 했던 이유는 오로지 단 하나,  '사(死)의 찬미'와 'Gloomy Sunday'라는 노래 때문이었다. 'Gloomy Sunday'와 얽힌 글은 부다페스트가 배경이 된 영화  'Gloomy Sunday'이야기와 함께 다음 글에서 다루고 오늘은 '사의 찬미'만 이야기한다.

우리나라 최초의 소프라노 가수인 윤심덕이 부른 '사의 찬미'라는 노래는  '다뉴브 강의 잔물결'이라는 곡의 도입부에 우리말 가사를 붙여 만들어졌다. '다뉴브 강의 잔물결'은 루마니아 왕국 초대 군악대 총감독을 지낸 음악가 이오시프 이바노비치(Iosif Ivanovich)가 1880년 군악대를 위해 작곡했다. 군악대를 위해 만든 곡이니만큼 원곡인 '다뉴브 강의 잔물결'은 '사의 찬미'처럼 슬프지 않고, 오히려 프랑스풍의 왈츠곡으로 활기차다.

'사의 찬미'는 글자 그대로 죽음을 찬미한다는 뜻이다. 노랫말은 모두 두 가지인데, 윤심덕이 부른 최초의 노래는 3절로 되어 있고, 각 절마다 동일한 후렴이 뒤 따르는 형식이고, 또 다른 노랫말은 2절로 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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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에 가는 곳 그 어데이냐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려 하느냐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고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


웃는 저 꽃과 우는 저 새들이

그 운명이 모두 다 같구나

삶에 열중한 가련한 인생아

너는 칼 우에 춤추는 자로다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고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설움


허영에 빠져 날뛰는 인생아

너 속였음을 네가 아느냐

세상에 것은 너에게 허무니

너 죽은 후엔 모두 다 없도다

눈물로 된 이 세상이    나 죽으면 고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것 허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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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는 무엇을 찾으려 왔느냐

이래도 한 평생 저래도 한 평생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


녹수청산은 변함이 없건만

우리 인생은 나날이 변한다

이래도 한 평생 저래도 한 평생

돈도 명예도 사랑도 다 싫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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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두 노랫말 가사를 모두 좋아한다. 그러나 세르비아에 도착해 도나우 강을 건너면서부터 내 입에는 3절짜리 윤심덕의 노래가 맴돌았다. 인생의 허무를 노래한 애절한 가사가 내 마음에 더 와 닿았기 때문이다.

나는 죽음에 집착하거나 삶을 허무하게 여기지는 않는다. 다만, 죽음을 생각할 때 삶은 더 소중하고,  삶의 유한함을 생각할 때 내 후대를 살아갈 아들에 대한 사랑이 더 깊어지기 때문에 죽음에 대해 생각하며 동시에 삶에 대해 성찰할 뿐이다.

노래 '사의 찬미'는 우리나라에 돌아와서 시차적응이 될 때까지 며칠간 계속 이어지며 내 입에서 흐르고, 이어폰을 통해 내 귀에서 울렸다.

헝가리 부다페스트 강가에 전시되어 있던 '도나우강의 신발들'은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2차 세계대전 때인 1944년~1945년에 도나우강가에 유태인들을 세우고, 총살을 당해 강에 쓸려 내려간 죽은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해, 2005년 4월 16일에 부다페스트 국회로 가는 강가에 마련된 수 십 켤레의 주인 잃은 신발들은 인권과 자유, 사람에 대한 삶과 죽음 그리고 강에 대해 생각하게 했다.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죽어야 하다니..., 심지어 어린아이의 신발도 있었다. '사의 찬미' 노랫말처럼 우리 모두는 칼 위에서 춤추고 있으면서도 그걸 모르고 타인들을 배려하지 않고 오로지 자신만을 생각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다만 강가에서 죽어간 유태인들의 죽음을 말없이 증언하고 있는  신발들 앞에서 사의 찬미는 가당치도 않는 노래였다. 감히 사의 찬미라니? 어떻게 죄 없이 억울하게 죽어간 사람들을 두고 죽음을 찬미한단 말인가? 해서는 안 될 일이다. 다만, 주인 잃은 신발들을 보며 생각했다. 정년퇴직을 하고 내가 나에게 주는 상으로 유럽여행을 하는 동안 나는 내가 지나왔던 삶에 대해 생각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렇게 치열하게 경쟁하고, 다툴 일은 아니었다. 한 번 왔다 한 번 가는 인생 더 즐겁게 지냈어야 했다. 승진하고, 명예를 더 얻고, 월급을 조금 더 받는 게 삶을 즐기는 것보다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남을 더 배려하고 받아들여야 했다. 삶이 나무라면 여행은 대나 마디와 같은 역할을 한다. 그동안의 삶을 돌아보고, 앞으로 나아갈 바를 생각하는 여유를 찾을 수 있게 한다. 내가 아내와 더불어 가장 사랑하는 내 아들과 24시간 붙어서 웃고, 이야기하고, 함께 즐거워하는 시간도 더없이 소중하다. 여행지에서 보고 듣고 느끼는 많은 다름이 내 자신의 삶조차 다르게 보게 한다. 내 아들도 나처럼 많은 것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고 내가 겪은 시행착오 없이 살았으 좋겠다.

지금도 도나우 강은 흐르고, 부다페스 야경은 여전히 아름답겠지?

세 번 유럽을 다녀온 여행 중 아내와 아들과 함께 다시 한번 가 보고 싶은 곳으로 손꼽을 부다페스트일 만큼...!

불가피한 사정으로 이번에 못다 한 여행, 아내의 퇴직과 아들의 군 제대 시기에 맞춰서 다시 한번 오리라. 그때 꼭 부다페스트를 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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