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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Dec 30. 2018

감기와 베오그라드

프라하 이틀 째, 블타바 강을 따라 걸을 때 오싹거리며 추웠다. 그래도 피끓는 젊은 청춘인 아들과 함께 걸으니 폼나고 좋았다. 프라하에서는 공항을 오갈때만 시내버스를 탔고, 어디든 걸어 다녔다. 발과 무릎이 아프고 체력이 소진된 상태에서 찬 강바람은 내게 기침을 주고 열이 오르게 했다. 폼잡으려다가 폼사하는 중이다.

여행 삼일 째, 첫 비행기의 지연으로 발생한 환승 할 비행기의 탑승 가능 여부로 속을 끓였고, 만약 도착하지 않은 짐을 다음 날 오후까지 호텔에 배달해 주겠다는 약속이 지켜지지 않으면 예약 해 둔 교통편을 취소하는 등 이후 일정을 변경해야 했기에 또 마음을 졸였다. 졸인 간장게장은 맛이라도 있지만, 졸인 마음은 입맛을 쓰게했다. 체력에 더해 정신력까지 소진되자, 구경이고 뭐고 어서 호텔에 가서 쉬었으면 하는 생각만 들었다. 베오그라드에 도착한 오후, 구경할 시간은 충분했으나, 호텔에 머물렀고, 여행 사 일째에도 겨우겨우 구경을 다녔다. 베오그라드에서 봐야할 곳이 네 곳 뿐인 것이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수시로 내 이마에 손을 얹고, 목에 손을 넣으며 열을 점검하고 '괜찮냐?'고 상태를 물으며 걱정해주는 아들의 마음씀과 부드럽고 따스한 손길이 고맙다. 아버지로써 내가 보호자가 되어야 함에도 관계가 역전되어 오히려 아들에게 짐이 되고 있어 미안하다. 내 옆에서 나를 부축하고, 때로는 내 가방까지 대신 짊어지고 앞장 서 겄다가 멈춰서서, 느리게 겄는 나를 독촉하지 않고 기다려주는 아들이 고맙고 또 사랑스럽다. 내 아들이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 부모인 나는 공부하라 재촉하고, 놀고 싶기만 할 어린 나이를 기다려 주지 않았었음이 부끄럽다.

여행 출발 전 짐을 쌀 때 호텔에서 추울테니  1인용 전기담요를 챙기라고 엄마에게 부탁했던 아들 덕분에 가져 온 전기담요. '나는 호텔이 춥다니? 도대체 왜 이걸 갖고 가야하나?'며 아내에게 불평하고, 가져 왔었는데 정말 유용하게  쓰고 있으니 아들의 혜안이 놀랍다. 몸이 아프니 뜨거운 물을 받아 놓은 욕조에 몸을 담그고 싶으나 샤워부스만 있고, 객실은 춥지 않을 정도여서, 감기 걸린 내게는 부족했다. 전기담요를 침대 위에 깔고 두꺼운 이불을 덮으니 땀이 흐르면서 몸이 풀린다.

등짝 아래서 열을 뿜는 전기 담요 덕에 몸에서는 땀이 흐른다. 체온이 오르면 내 면역력도 오르니 감기기운과 싸우고 이길 것을 머리로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불 밖으로 드러낸 발은 더움을 참지 못하고 표출하는 본능이고, 발을 다시 이불 속으로 넣음은 빨리 낳고 싶은 욕망이다. 내가 어린 시절 감기에 걸리면  아버지와 어머니는 감기에 걸린 나를 곁에 두고 따듯하게 감싸주셨다. 이불을 걷어 차는 나를 다독이시느라 제대로 못 주무셨을 부모님께 죄송하고 감사하다.


베오그라드!,

'하얀 도시'라는 의미인 베오그라드의 첫 인상은 흰색보다는 잿빛에 가까웠다. 부숴진체 방치된 건물들, 이용하고 있음이 분명한 건물들도 페인트가 벗겨지고 여러 곳에 파손된 흔적이  있었다. 정비되지 않아 잘 못 하면 발목까지 빠져 크게 다치거나 걸려 넘어질 길을 걸으며, '우리나라 같으면 벌써 민원 대상이 되어 메꿔지고 깔끔하게 포장되었을텐데' 라는 생각이 들었다.

19세기 초부터 대략 20년마다 전쟁으로 파괴가 거듭되다 보니, 고대와 중세 유적이 별로 남아 있지 않다. 40번의 폭격에도 살아 남은 도시가 베오그라드다.

공항에서 호텔로 올 때 시내버스타고 건넜던 사바강이 도나우강과 합류하는 지점을 볼 수 있는 Belgrade Fortress를 찾았다. 우리 말로 두물머리라 할 수 있는 지점을 성 마루에서 볼 수 있었다. 여러나라를 거쳐 흐르는 도나우강은 강길을 따라 나라사이의 교류 통로였다. 두 개의 강이 도나우강 하나로 합해지는 지점이다 보니 교통의 중심지였을 터이고, 그 길목을 지키는 성은 필수였을 것이다. 내가 알지 못하는 전쟁의 역사가 이곳 성에서도 있었을 텐데, 과거 역사를 모르는 지금 나는 그저 성의 시설물과 강을 보고 있을뿐이다. 베오그라드 성에 이르는 길목에는 넓은 공원이 펼쳐져 있었다. 공원이 있으니 아이들의 뛰놂이 있었고, 나무의자에 앉은 노인의 쉼이 있었다. 이런 분위기와 다르게 공원 끝, 성벽 가까운 곳에는 전쟁을 위한 무기가 전시되어 있었다. 전쟁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갈구하는 소망은 프라하의 존 레논 벽에도 있었고, 비행기에서 본 창백한 푸른 점에서도 있었다. 한 톨 먼지에 불과한 지구 위에서 차지하는 영토의 크기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사람의 생명보다 소중한게 없거늘, 사람의 생명을 하찮게 여기는 전쟁이라니... 온 세상에 평화가 가득하기를 바라며 성을 나섰다. 성을 떠나 호텔로 돌아 오는 길, 서울 명동에 비견될 번화가를 지났다. 차없는 길 양편 가게들에는 쇼윈도우에 불을 밝히고, 상품을 전시해 놓았다. 하지만 내 눈길을 끈 것은 진열된 상품보다, 어려움 속에서도 삶을 꿋꿋하게 이어가고 있는 쟂빛 사람이었다. 추운 거리에서 구걸을 위해  아이를 안고 나온 아주머니, 나이 든 사람들, 한 푼이라도 벌겠다고 바이올린을 들고 나와 연주하는 사람 중에는 10살도 안 됐을 어린 소년도 있었고, 그마져도 없어서 빈 상자를 앞에 두고 노래를 하는 어린 소녀도 있어 가슴 아팠다. 어린 아이들, 힘없는 노약자들을 거리로 밀어 낸 나라. 결코 세르비아만의 문제가 아니고, 우리나라의 문제였고, 우리나라의 현재 문제이기도 하고 미래의 문제 일 수도 있다. 우리가 가꾸어 온 경제적 번영은 전쟁 앞에서 한 순간에 무너지기 때문이다. 종전 선언없이 휴전 상태인 우리나라. 남과 북이 싸우면, 돈을 벌 기회라며 좋아할 나라는 반성할 줄 모르는 일본이고, 중국과 러시아, 미국이다. 우리 땅에서 벌어진 전쟁에서 깨지고 부숴지며, 다치고 죽어 나가는 것은 우리 산하고 우리 국민인데... 2차대전에서 폐허가 된 일본이 1950년 우리나라에서의 전쟁을 계기로 다시 일어나 세계 열강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역사를 되풀이 해서야 되겠는가?


세르비아 정교회의 설립자인 성 사바를 기념하며 세워진 비잔티움 건축 양식의

성 사바 대성당은 옥색 돔이 돗보이는 베오그라드 랜드마크로 발칸지역에서 가장 큰 정교회다. 1935년 5월 10일에 공사가 시작되었지만 제2차 세계 대전으로  공사가 중단됐다, 1984년에 공사가 재개되었고 1989년 6월 26일에 준공되었으나, 우리가 방문했을 때도 공사중이라 접근이 제한적이었으나, 성당을 외과으로라도 한 바퀴 도려고 가다보니 출입문이 있어 내부를 구경할 수 있었다.

베오그라드에서 가장 넓다는 공화국 광장도 공사 중이라 가림막으로 가려져 있었다.

성 마르카 교회  역시 공사 중이었으나 다행히 지하 예배실은 들어 갈 수 있었다.

성당과 교회 모두 작년에 방문했던 하바롭스크의 그것과 비슷했다.

호텔에 돌아와 한 시간쯤 흐르니, 공항에서 짐을 가져 왔다는 전화가 호텔 프론트로부터 왔다. 다행이다. 계획된 일정대로 여행을 계속할 수 있게 되었고, 어제밤과 다르게 오늘 밤은 잠 옷을 입고 잘 수 있다.

왼쪽이 사바강 윗쪽이 다뉴브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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