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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Dec 31. 2018

베오그라드를 떠나 노비사드로 향하는 날

노비사드는 세르비아의 제 2도시다. 구글맵에서 검색하니 베오그라드에서 94Km 거리에 있다. 어제 관광에 나서기 전 베오그라드 중앙역에 들려서 오늘 표를 예매했었다.

아침 11시 13분 출발 오후 1시 12분 도착하는 기차다. 세르비아에서는 인터넷으로 예약하지 못 한다. 구글맵에서 대중교통으로 검색을 하면 반응이 없다. 우리 호텔 근처에 기차 역이 있어서 예매하려 해도 안 된다며, 전산화가 안 됐으니 직접 가야한단다. 헉! 유럽에 아직도 이런 나라가? 세금 포탈하기는 좋은 나라네.

아들이 도시 세를 내고 호텔을 체크 아웃하는 동안 나는 호텔 로비에 걸린 크림트의 키스를 촬영했다. 이  행동이 우리를 허겁지겁 뛰게 할 줄은 몰랐다. 호텔을 벗어나 시내버스 정류장 으로 가서 어제 촬영해둔 시내버스 번호판을 찾아보려는데, 전화기가 없다. 평상 시 전화기를 호주머니에 넣어두는 습관이 있어서 위 아래 옷의 모든 호주머니를 뒤져도 없었다. 가방을 열어 보다가  크림트의 키스가 생각났다. 맞아, 호텔 프론트까지는 있었어. 다시 호텔까지 뛰어 오는데 감기 걸려 아픈 몸이 꾀병이라 할만큼 뛰었다. 다행히도 전화기는 내가 앉았던 소파에 그대로 있었다. 크림트의 키스를 담은체로... 전화기가 없어 진다면 예비로 아이폰을 가져 왔으니, 외국에서는 유심칩을 끼워 우선은 쓸 수 있었지만 문제는 사진이었다. 호텔의 인터넷 환경이 너무 열악해서 글과 사진 몇 장만 올리고, 나중에 우리나라에서 더 많은 사진을 첨부하려 했는데, 전화기를 잃어버리면 그게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오늘 호텔에 도착하면 전화기의 사진을 OTG USB로 옮겨 두어야 겠다. 살다보면 우연히 한 작은 행동이 더 큰 사건을 일으킨다. 몸이 아프니 정신줄이 자꾸 꼬임을 느낀다. 더 자주 정신을 차려야겠다. 어쩌면 이번 일이 더 큰 일이 있을 수 있음을 알리는 신호일지도 모르니...

시내버스를 타려던 계획을 변경해 택시를 탔다. 어제 시내버스 요금이 두 사람 합해 300디나르 였는데, 택시요금은 400디나르 였다.

기차를 타는 지하에 갔더니 9번 트랙에 기차가 서 있었다. 출발시간 보다 40분 정도 남았는데 기차가 시동을 걸어 놓고 있기에 다른 곳으로 가는 기차려니 하고 의자에 앉아 있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100% 그렇다. 기차에 운행구간이 종이에 씌여 있었으나, 너무 빨리 기차가 시동을 걸고 있어서 확신을 할 수 없었다. 역 구내에 승무원이 한 사람도 보이지 않아서 물어 볼 수도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는데, 조금 전 일행과 헤어져 기차에 탔던 아주머니가 다시 문을 열고 누구를 찾는 눈치다. 우연히 나랑 눈이 마주쳐서 내가 활짝 웃어줬다. 아주머니도 웃더니 어디를 가느냐고 묻는다. '노비사드'하고 대답했더니 타란다. 때로는 유창한 말보다 아름다운 미소가 훨씬 더 많은 일을 한다. 그런데 내 미소가 아름다운지는 나도 모른다.

기차는 지정좌석제가 아니라서 아무 곳이나 마음에 드는 좌석에 앉으면 되었다. 우리 앞 자리에 앉은 젊은 아가씨 네 명이 웃고 떠든다. 낙엽굴러가는 것만 봐도 웃을 나이는 지났는데, 그녀들의 웃음이 참 싱그럽다. 세르비아의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웃음이길 빌었다.

차창 밖으로 스치듯 지나는 풍경이 겨울의 황량함을 가득 안고 있다. 산은 안 보이고 계속되는 평원이 이어진다. 심지어 농사조차 짓지 않는 땅이 많다. 인구 수에 비해 여유로운 땅이 부럽다. 도나우강을 따라가는 기차를 탄 덕분에 보고 싶었던 강을 감상하며 가는 호사를 누린다.

2년 만에 타보는 유럽기차가 예전 가족이 함께했던 여행을 떠올리게 한다. 아내가 함께 있었으면 더 좋았을텐데.

크림트의 키스
베오그라드 기차역
기차에서 본 도나우 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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