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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Apr 07. 2016

시장에서 행복했던 아이 그리고 어묵

집에서 에디톨로지 책을 읽고 있는데 아내가 "시장에 가자"고 한다.
설 준비로 물김치를 담고, 다음 주에는 배추김치를 담글 예정이라면서...
사과랑 배추, 무 등을 사서 손수레에 싣고 묶고 있는데 다른 것 사 온다며 배추가게 앞에서 기다리라고 했다.

아직은 설날이 코 앞이 아니라 시장이 붐비지는 않지만 그래도 다른 날보다는 사람들이 많았다.

다들 분주하게 움직이는데, 나만 가만히 서서 오가는 사람들을 보는 재미도 괜찮다.


엄마 손 잡고 깡총거리며 흥겹게 엄마를 따라 시장 나들이에 나선 아이가 설탕이 듬뿍 묻은 도넛을 한 입 맛있게 베어 물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니 "안녕하세요?"한다.
나도 웃음을 지으며 " 안녕?" 하고 대답했다.

아이가 손까지 흔들어 주며 웃고 지나갔다.

나도 손을 흔들었다.

내 모습을 누군가 보았다면 미소까지 짓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었을 것이다.

왠지 모르게 나도 더불어 행복해진다.
인사 하나로도 행복해지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깜박 잊고 있었다.

이를 다시 일깨워준 아이가 고맙다.


불현듯 나도 어릴 때 엄마따라 시장에 갔다가 어묵을 얻어먹었던 기억이 떠 오른다.

왼손에 든 나무판 위에서 반죽을 어묵 모양으로 만든 것을 오른손에 든 나무 막대로 기름 가득한 그릇 속으로 밀어 넣는 것을 볼 때마다 나도 한 번 해보고 싶었었다. 어릴 때였지만 당장 해 보라고 해도 금방 해 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잠시 후 아저씨가 큰 채를 기름 그릇에 담갔다가 올리면 채에 걸려 올라오던 어묵에선 기름방울이 뚝뚝 흘렀다. 고소한 냄새로 시장을 가득 채우던 어묵을 볼 때면 나는 언제나 군침을 꿀떡 삼켰었다. 엄마 손을 놓친 것도 잊은 체…. 그렇게 어묵 집 앞에서 넋을 잃고 있으면 시장을 다 보신 엄마는 나를 데리러 오시곤 했고, 드물게 어묵을 사 주시기도 하셨다. 지금 같으면 튀긴 기름을 다시 사용하느니 마느니, 산도가 얼마고, 불포화지방산이 어떻고 따질 텐데 그때는 묻지도 따지지도 않았었다. 한 마디로 먹고살기 바빴던 것이다.
시장따라 다니며 다른 것도 많이 먹었을 텐데 어묵 먹었던 생각이 떠오르는 건 왜일까?

학교 다닐 때 어머니께서는 도시락 반찬으로 어묵을 자주 싸주셨었다. 나는 그걸 맛있게 먹었었고….
회사 구내식당에서 어묵 반찬이 나오는 날은 내 식판에 어묵이 수북하게 쌓인다. 지금도 어묵을 좋아하는 걸 감출 수 없게 내 안의 어린아이가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결혼을 한 후에는 아내따라 시장엘 다닌다. 아내는 시장에서 과일을 자주 사 준다. 어릴 때부터 지금까지 시장은 나에게 간식을 하는 기분 좋은 장소다. 사람들의 활기참으로 흥이 오르는 것은 덤이다. 오늘은 집에 가는 길에 어묵을 사가자고 아내를 졸라야겠다. 그 옛날 엄마에게 그랬던 것처럼….
행복한 아이의 웃음 띤 인사가 시장 한 귀퉁이에 멍하게 서 있던 나를 어린 시절로 돌아가게 했고, 행복하게 한다.

갑자기 시장을 오가는 사람들도 행복해 보인다.

사람은 보고 싶은 대로 본다더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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