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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Feb 26. 2016

냉이를 다듬으며

아내가 "아들아!" 하고 부르는 소리에 방에서 책을 보던 우리 부자는 주방으로 갔다.
아내가 "냉이 다듬자"며 냉이를 내어 왔다.

어제 성묘 길에 들린 밭에는 시나브로 스며든 봄을 머금은 냉이가 머리를 내밀고 있었다.

우리는 등으로 쏟아지는 따뜻한 햇볕을 받으며 봄을 캐었다.


펼쳐 놓은 신문 두 장 위에 수북이 쌓인 봄.

냉이를 중심으로 셋이 모여 앉아서 아내가 가르쳐 준대로  잔뿌리와 누렇게 마른 잎을 따 내었다.
아내가 퇴근길에 자주 듣는다는 라디오 방송 - '사랑하기 좋은 날 이금희입니다' - 의 사연과 음악을 들으며, 그동안 살면서 생각하고 느낀 것들을 도란도란 이야기하였다.

냉이를 다듬다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아바의 SOS 노랫소리에 맞춰 흥얼거리는 내게,

"아빠는 좋아하는 가수가 있는가?" 하고 아들이 물었다.
"김정호, 어니언스, 박인희, 프랭크 시나트라, 끌로드 제롬..."이라고 대답했다.
"엄마는?" "최백호, 조용필, 심수봉..."
내가 물었다. "아들아 너는?"
"?₩&@#??%£??" 아들이 대답한 가수 이름을 하나도 기억 못하겠다.
마이너, 언더 그라운드 가수들을 좋아한다는 말만 기억날 뿐....

(글을 적으며 다시 물으니, 스탠딩에그, 나윤권, 브로콜리 너마저란다.)

괜히 물었다. 처음 들어 본 이름들이라 가수 이름인지, 노래 제목인지 조차도 헷갈린다.

아들이 중학생일 때까지는 좋아하는 노래와 가수도 알았었는데...
사소한 것까지도 이야기하며 소통한다고 생각했던 것은 나만의 생각이었다.

대학을 다니느라 서울에 사는 아들과 지방에서 사는 우리 부부로 나뉘어서 한 달에 한 번 꼴로 만나는 탓이기도 하다.

아내가 아들을 부르며 신기한 것을 보여준다 해서 다시 부엌으로 갔더니 우리가 손질할 땐 갈색으로 말라비틀어져 있던 냉이 잎들이 파릇한 봄의 색깔을 되찾으며,  물속에서 따뜻하게 데쳐지고 있었다.
'음, 조금 있으면 맛있는 냉이 무침을 먹을 수 있겠네' 군침이 돌았다.

따뜻한 물에서 몸을 녹이는 냉이를 보고 있자니 햇빛을 쪼이고 있던 봄이 오는 밭의 모습이 떠 올랐다.

설날은 이별이다.
왔던 가족들이 계속 떠나간다.
내일은 또 아들이 서울로 간다.
아들의 빈자리로 한동안 허허로울 마음은 아들이 먹다 남긴 냉이무침을 보며 달래야 하나...?
3월 봄에 다시 만날 때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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