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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Jun 29. 2020

무등산 원효사에서 토끼등으로 가는 길

‘하~! 집에만 있기 답답하다.’ 느끼면 우리 식구 가볍게 나서는 길이 토끼등 다녀오기다. 광주 아파트에서 살면서 날마다 무등산 정상을 본다. 베란다 창문으로 보이는 무등산은 그대로 한 폭의 그림이다. 날마다 똑같은 모습의 무등산이 아니라, 날씨와 계절에 따라서 시시각각 변하는 무등산의 모습을 본다. 어떤 날은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어떤 날은 치마처럼 구름을 허리에 두르고 섰다. 비가 내리거나 안개가 낀 날에 무등산은 모습을 감추고 하루 쉰다.

무등산장까지 버스를 타고 주차장에서 내려 조금 오르면 원효사가 나오고, 원효사를 지나 포장된 길을 따라 오르면 늦재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 길에 늦재 쉼터가 있다. 늦재 쉼터 이름은 만치정이다. ‘늦재’는 옛날 나무꾼들이 해질 무렵 풀피리 불며 쉬어가는 장소라 하여 늦재라는 이름이 붙었고 이를 한자로 새겨 늦을 만(晩)에 언덕 치(峙)로 하여 만치정이라 한다. 아쉽다. 만치정보다는 늦재가 더 좋고, 늦재라는 말보다는 ‘풀피리 언덕’이라 불렀으면 더 정감이 넘치고 이곳 지명에 대해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을 텐데.

아쉬움을 뒤로하고 토끼등으로 향하면 이제부터는 평길이다. 포장이 되어 있어 아들이 어릴 때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다니기도 했다. 어른 걸음이 아무리 빨라도 아이의 롤러스케이트 속도를 따라잡을 순 없었다. 아들은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우리 부부를 지나쳐 저만큼 갔다가 되돌아오곤 했다. 그 아들이 지금은 서울대대학원 석사과정을 마치고 바닷가 진해에서 해군 장교로 의무 복무 중이다. 토끼등으로 가는 길은 아들에 대한 그리움의 길이고, 아들이 어쩌다 한 번씩 주말에 광주로 오는 날엔 옛 기억을 함께 회상하는 길이기도 하다. 무등산으로 가는 수많은 길이 있어도 우리 부부가 자주 찾는 길이 토끼등인 이유는 아들에 대한 추억 때문이다. 초록 초록한 길을 걸으면 초로롱 초로롱 산새가 노래한다. 새의 모습을 볼 수 있으면 좋으련만 나뭇가지 사이에 숨은 새를 노랫소리로 느끼기만 한다. 눈을 감는다. 눈을 감아 소리에 집중하면 더 많은 소리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하여…….

길을 걷다 보니 안내판이 눈에 띈다. 뭘까? 하고 다가서니 지금 걷고 있는 길에 관한 내용이다. 1982년 원효사에서 증심사로 이어지는 일주도로 5.7Km 구간 도로 개설과 포장공사가 시작됐었단다. 공사가 시작되고 무등산 허리가 잘려나가는 모습에 시민들 반대를 하자 다행히 공사는 중단되었다고 나와 있다. 원효사에서 토끼등으로 가는 2.6Km까지만 도로가 개설된 이유다. 다행이다. 공사가 계획대로 진행되고 포장된 도로로 씽씽 자동차가 다녔다면, 오늘 길을 걸으며 줄무늬 선명한 다람쥐가 급하지 않은 걸음으로 길을 횡단하거나 풀숲에 앉아 오물거리는 모습을 어쩌면 볼 수 없을지도 몰랐을 테니까…….

자연이 주는 위로를 어찌 돈으로 가치 매길 수 있겠는가? 노자의 도덕경을 읽은 사람이라면 알고 있을 ‘위무위, 사무사, 미무미, 대소다소, 보원이덕.(爲无爲, 事无事, 味无味 大小多少, 報怨以德.) - 무위를 행하고, 아무것도 일삼음이 없음을 일삼으며, 맛없음을 맛보니 큰 것은 작게 여기고 많은 것은 적게 여기며 원한은 덕으로 갚는다.’를 안다면 말이다. 세상 살면서 자신의 임기 동안 치적을 쌓기 위해 억지로 치적 쌓기용 일을 하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차라리 주는 월급 따박 따박 받고 가만히 있으면 중간이라도 갈 텐데, 미련한 것이 부지런하기까지 하니’ 하며 혀를 차게 만든다. 혀가 축구공도 아닌데……. 치적을 쌓으려 하지 말고 덕을 쌓으려 하면 좋겠다. 나서기 좋아하는 '안다니 박사' 노릇 하려는 사람을 보면 덕산정에 앉혀 놓고 싶다.  붉은 철쭉을  보며 철쭉쉼터의 의미와 덕스러움의 중요성을 깨달았으면 하는 생각이 든다.

잰걸음으로 걷지 않고 싸목싸목 걸어도 바람재가 나온다. 바람 대신 내가 쉰다. 쉬며 지도를 보니 이곳에서 동화사 터, 증심사, 늦재, 토끼등, 지산유원지로 가는 길이 연결되어 있다. 말 그대로 오거리 길이다. 산수동 오거리 길을 지나왔는데, 바람재 오거리 길이라니, 오거리에서 오거리로 온 셈이다. 바람재는 봄에 붉은 철쭉으로 아름다운 곳이다. 6월인 지금도 붉은 철쭉이 남아 있다. 꽃은 언제 어디서나 예쁘다. 꽃을 보는 마음까지 예쁘게 하는 마법을 지녔다. 나도 사람들을 예쁘게 하는 마법을 갖고 싶다. 예뻐져라 얍!

이제 덕산너덜이 보인다. 무등산에서 유명한 너덜을 볼 수 있는 곳 중 하나다. 너덜은 너덜겅으로도 부르는데, 돌이 많이 흩어져 있는 비탈을 의미하는 순우리말이다. 중생대(약 7,500만 년~6,400만 년 전)에 생성된 주상절리대가 풍화되어 지금의 너덜겅이 되었다 한다. 덕산 너덜은 무등산 최대의 너덜로 길이 600m, 최대 폭 250m 규모로 규봉암 근처 지공 너덜과 함께 대표적인 너덜이라 한다. 예전에는 올라위 위에 앉을 수 있었으나, 지금은 줄을 쳐 막아 놓았다. 그렇지, 사람들의 극성스러움에 바위인들 남아나겠는가?

조금 더 지나니 약수터가 나온다. 너덜겅 약수터다. 정기적으로 식수 품질을 검사한다 하니 마음이 놓인다. 푸른 나뭇잎 아래 검은 돌 틈 사이로 흰 물줄기가 떨어진다. 용머리 입에서 떨어지는 물줄기를 받아 마시면 무더운 날 땀 흘리며 걸었던 피로가 사라지고 날아오를 것 같다. 승천하는 용의 등을 타고 오르듯이...

100미터를 더 가니 오늘의 목적지 토끼등이 나온다. 왜 토끼등이라 부르는지 인터넷을 검색해도 이유가 나오지 않는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무등산 문화해설사에게 물어봐야겠다. 설명을 듣지 않고 토끼등처럼 생겨서 그렇지 않을까? 혼자 짐작해 본다. 여러 가지 운동기구가 보다. 배낭을 등에 지고 산길을 오른 사람들에게야 운동기구가 필요 없겠으나, 나처럼 평탄한 길을 걸어온 사람이라면 운동기구를 이용해 보는 것도 좋다. 소리정에서 쉰다. 토기등에 도착해 소리정에 쉬면서 생각한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내가 토끼의 울음소리를 알 수는 없다. 토끼도 짐승이니 분명 소리를 낼 텐데, 들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들과  함께 토끼에게 풀을 뜯어다 주며 논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대신 땀을 식히는 바람 소리를 듣는다. 소리정에 앉아 쉬며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린다. 토끼등 정자 이름이 소리정인 이유는 이곳에 쉬면서 토끼처럼 귀를 쫑긋 세우고  자연의 소리를 들어 보라는 의미는 아닐까? 우리 선조들은 ‘소나무 숲을 지나는 바람 소리를 ‘송뢰’라 이름 지었고, 참나무류의 곁을 스치는 바람 소리를 ‘갈잎의 소리’라 노래하였다.’고 한다. 오늘 토끼등에 오기까지 참 많은 소리를 들었다. 어쩌면 내 귀가 둔감해서 다람쥐가 오물거리는 소리, 하늘을 팔랑이며 날다 떨어지는 꽃잎 소리, 나뭇가지에 앉아 노래하는 새의 깃털을 스치는 바람 소리처럼 듣지 못한 소리도 있었을 것이다. 지 못하는 소리는 어쩔 수 없이 상상에 맡긴다. 대신에 내가 걸을 수 있도운동화와 함께 볼 비비며  서걱거리던 흙과 돌의 소리에서 드러내지 않고 자신의 역할을 충실히 해내는 자연의 역할을 배운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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