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 북구 충효샘길에 있는 아름다운 충효동 마을, 이름은 성안마을이다. 성안마을 입구 담벼락에 적혀 있는 성안마을 유래를 여기에 옮겨 적는다. '성안마을, 이 동네 이름이 성안, 충효동 성안 삥삥 둘러 갖고 성을 쌓는 갑등만, 충장공 하나부지가 싼성이 있다고 이 동네 둘레둘레 성을 쌓는갑등만 충효동에서 있고, 산이 성처럼 둘러져 있어서 마을 이름이 성안이라'
똑같은 돌이 하나도 없이 제 각각 여러 모양으로 생긴 돌들이 겹겹이 쌓여 이루어진 돌담길이다. 네모반듯한 벽돌이 아니라서 더 튼튼한 돌담에 희고 붉은 꽃이 피었다. 나무가 손 뻗어 내민 가지에 매달려 핀 꽃이 돌담에서 숨을 쉰다.
도종환 시인은 '흔들리며 피는 꽃'이라는 시를 썼다.
'흔들리며 피는 꽃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면서 피었나니/ 흔들리면서 줄기를 곧게 세웠나니/ 흔들리지 않고 가는 사랑이 어디 있으랴/ 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이 세상 그 어떤 빛나는 꽃들도/ 다 젖으며 젖으며 피었나니/ 바람과 비에 젖으며 꽃잎 따뜻하게 피웠나니/젖지 않고 가는 삶이 어디 있으랴'
내가 좋아하는 시 중 하나다. 오늘 돌담에 핀 꽃을 보니 자연스레 떠오른다. 하지만 이 시는 이곳 꽃 돌담길에 어울리지 않는다. 이곳에 핀 꽃은 바람이 불어도 흔들리지 않기 때문이다. 돌담을 장식하며 핀 꽃과 가지가 쇠로 만들어져 있어서 결코 흔들리는 법이 없다. 도종환 시인이 꽃 돌담길을 걸으면 뭐라 할까? 담 너머 고개를 내밀고 나를 보던 붉게 핀 꽃이 바람에 흔들리며 말을 건네 온다. "시인은 그래도 '흔들리며 피는 꽃'을 노래할 거야"라고. "시인은 보이지 않는 세상을 보고 느낀다"라고…….
돌담길을 따라 거닐다 보니 돌담을 쌓은 돌보다 더 큰 돌무더기가 쌓여 있다. 둥글둥글 예쁜 조약돌들이 탑을 이루며 서 있다. 둥근 모양의 조약돌들엔 꽃잎과 붉고 파란 무늬들이 그려져 있다. 이 돌탑은 근처에 있는 충효분교 아이들이 동심을 담아 그리고 쌓은 소원돌탑이란다. 아이들이 참 재주도 좋지. 둥근돌을 어떻게 쌓았을까? 내 걸음 소리에 놀라 탑이 무너질까 두려워 까치발로 걷는다. 동심으로 바라보는 세상은 이렇게 둥글둥글하구나. 돌에도 아름다운 꽃이 피게 하는구나. 나도 어릴 땐 동심이 있었을 텐데. 그 동심 어디로 갔을까? 아쉽기만 하다. 동심으로 쌓은 내 돌탑은 어디로 무너지고, 난 세월만 쌓고 있을까?
소원돌탑을 지나 모퉁이를 돌아보면 검은색 기와를 머리에 얹은 정자 하나가 보인다. 어머니 품처럼 자식들에게 모든 걸 내어주고 품어주는 부연정이다. 가을엔 정자 아래 연못에 아름다운 연꽃이 피어 아름답다고 한다. 가을에 꽃을 피우기 위해 연잎은 초봄부터 물 위에 머리를 내밀어 햇빛을 담아 뿌리로 내리고 있다. 가을에 한 번 더 와야겠네. 연꽃 핀 부연정을 보러……. 부연정 좌우로 배롱나무가 자라고 있다. 꽃 돌담길, 배롱나무꽃, 연못에 핀 연꽃이 부연정과 잘 어울릴 것 같아 봄부터 설레고 기다려진다.
부연정에 앉아그늘을 즐긴다. 아침저녁으론 쌀쌀하지만, 낮엔 더워서 벌써 그늘을 찾는다. 시원한 물 한 모금 생각난다. 부연정에 들어서니 샘터가 보인다. 이름이 충효샘터다. 오래전부터 충효샘터는 성안마을 사람들에게 식수와 방화수 역할을 했다. 흘러넘치는 물길을 따라 빨래터도 만들어져 있다. 지금은 식수로 사용되지 않고, 집집마다 세탁기가 있는 세상이라 할일 없어진 빨래터가 하늘을 보며 쉬고 있다. 샘터엔 하늘 구름이 문신처럼 새겨져 있다. 빨래터 안 쪽 돌담에 빨래하는 아낙들의 모습이 그림으로 등장한다. 박수근 화백의 그림이 있기도 하고, '맑은 날 옛 빨래터'란 글이 적힌 그림도 있다. 부연정에 앉아서 바람소리에 귀를 기울이니 '탁탁탁' 소리가 들린다. 어머니들의 빨래 방망이 소리다. 그 보다 더 많이 들리는 소리도 있다. 어머니들의 꽃보다 더 고운 입술을 빌려 나는 '호호호' 웃음소리와 동네 소식이다. 그 옛날 빨래터는 어머니들이 동네 소식을 듣는 사랑방이기도 했다. 빨래는 덤일 뿐이었다. TV, 라디오가 없이도 개똥이네집 소가 송아지를 낳은 소식부터, 아무개집 아들이 한양 가서 성공했다는 소식까지, 앉아서 천리 소식을 듣는 곳이었다. 방망이질로 털어낸 시집살이의 설움이 빨래 흔든 물과 함께 떠내려 가던 며느리들 공간이었다. 문득 어머니가 보고 싶다. 빨래를 하시던 어머니 모습이 눈에 어른거린다. 봄이라 황사가 불었나? 눈에 티가 들어갔는지 눈물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