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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Nov 21. 2020

촛불 켜고 캄캄한 길을 걸어가며...

나이 들어서 공부한다는 것, 못할 일이다. 많이 힘들었다. 그러나 해볼 만했다.
통신회사 정년퇴직 후 재취업한 곳은 퇴직했던 직장과 업무성격이 전혀 다른 소방시설 회사다. 30년도 넘은 시절 군에 있을 때 시험 봐서 취득해 놓았던 '소방설비기사 1급 전기분야' 자격증으로 재취업다. 새로 시작한 소방시설 업무가 생소해서 배우는 재미 즐다. 일을 하다 보니 회사와 주위에서 소방 전기분야 말고 소방 기계분야 자격증도 있으면 좋다고 했다. '그래? 그러면 시험 봐서 따면 되지.' 60세가 넘어서 사회복지사 1급과 청소년상담사 자격시험에 합격한 경험이 있 큰 걱정 안 했다. 63세라는 나이는 문제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학교에서 배워 본 적 없는 소방분야, 게다가 전기도 아닌 쌩판 낯선 기계분야였다. 공부하 낯선 용어들 때문에 어려웠다. 외우고 돌아서면 잊어버릴 나이, 외우며 서너 번  책을 다시 펼쳐 들면 처음 본 듯한 문제들이 나를 막아섰다. 나이로 퇴화된 기억력은 유감없이 장애물 역할을 했다. 그래도 될 때까지 해보자. 내년에 한 살 더 먹으면 더 힘들어진다. 올해 무조건 합격하자. 각오를 다졌다. 책을 보고 또 봤다. 4지 선다형 4과목로 구성된 1차 필기시험은 두 달여 공부하니 해볼 만했다. 예정대로 3월에 시험 보면 합격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 왔다. 그러나 코로나 19로 시험이 두 차례나 연기되어 3월 시험이 5월로 연기되었다. 덕분에 더 많은 공부를 할 수 있었으나 두 달이라는 시간이 아까웠다. 두세 달 여 공부하면 합격할 1차 시험을 보고 더 어려운 서술형 2차 시험공부에 시간을 할애하고 싶었으나 1차 시험이 길을 막고 있어 답답했다. 우여곡절 끝에 1차 시험치르고 80점 후반 점수로 통과했다. 한 달 반 후 응시한 2차 시험에서 보기 좋게 떨어졌다. 공부에 최선을 다 했으나 한 달 반 밖에 공부를 못했으니 합격하면 오히려 이상했다. 피곤했지만 시험을 보고 온 날부터 10월에 있을 2차 시험을 위해 다시 공부에 들어갔다. 2차 시험은 계산문제와 단답 또는 두세 줄짜리 서술형 문제다. 아무거나 찍어서 맞출 수 있는 문제는 없다. 책을 통째로 외워야 해서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항상 책을 들고 다녔다. 회사 책상 위에 보든 안 보든 책을 펼쳐 놓았다. 속이 더부룩해졌지만 밥 먹으면서도 책을 봤고, 눈이 피로했지만 흔들리는 출퇴근 시내버스에서도 책을 봤다. 길을 걸어야 할 경우엔 외울 내용을 미리 머릿속에 담아 두고 이동 중에 중얼거리며 외웠다. 종이에 공식을 적어서 들고 다니며 외우기도 했다. 잠들기 전까지 책을 봤고,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습관처럼 책을 보고 외우거나 계산 문제를 풀었다. 한 마디로 앉으나 서나 누우나 공부를 했다. 공부를 하면서 '내가 학생 때 이렇게 공부했으면 사법고시도 합격했을 거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애감도 들고 화도 났다. 젊었을 때는 기사 1급 시험 정도야 쉬엄쉬엄 놀면서  한 두 달 공부해도 합격했는데, 나이 들어서는 근 달이 넘게 공부를 하고 있으 들었던 감정이다.
시험날, 새벽에 일어나 두꺼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시 보고 시험장으로 향했다. 기필코 합격해야 한다는 마음이 하늘에 닿았을까? 시험지를 받아 들고 전체 문제를 훑어보니 낯선 문제는 한 문제, 나머지는 눈에 익숙한 문제라서 마음이 놓였다. 그만큼 공부를 많이 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비록 떨어지기는 했으나 두 달 전 봤던 시험 경험에서 시간에 여유가 있음을 알았기에 차분하게 시험문제를 풀었다. 시험 종료 시간보다 20분 먼저 시험을 마치고 시험장을 나왔다. 이번엔 합격할 것 같았다. 그러나  시험 결과를 알 수 없으니 발표까지 한 달 여, 다소 불안한 상태에서 지냈다. '혹시 떨어질 걸 대비해 다시 공부하는  책을 들어야 하나?, 아니면 이대로 내가 하고 싶은 걸 해도 되나?'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 한 상태에서 어물쩍 시간이 흘렀다. 시험 발표날, 일을 하느라 깜빡하고 있는데, 회사에서 '시험 결과 확인했냐?'라고 물어왔다. '아 맞다. 오늘이 그날이지!' 두근거리는 마음을 누르며 인터넷에 접속해 결과를 확인했다. '축하합니다 정규석 님 합격입니다.'라는 글자가 보였다. 몇 번을 확인하고 또 확인했다. 가족 생각이 났다. 제일 먼저 가족에게 알렸다. 다음으로 회사와 친구들에게 알렸다. 축하 메시지가 쏟아졌다. 10개의 자격증 취득중에서 가장 많은 축하를 받았다.
'인일기백(人一己百)', '다른 사람이 한 번해서 되는 것을 나는 백 번을 해서라도 성공을 이룬다.'라는 말을 공부하는 내내 되새겼었다. 나이 들어 공부해보니 젊었을 때보다 열 배이상 더 힘들었다. 그래도 목표를 이루었으니 되었다. 내가 공부할 수 있도록 배려해준 아내와 응원해 준 아들 덕분에 해 낼 수 있었다. 부모님께도 감사하다. 나이가 들어서도 공부를 할 수 있는 머리를 주셨고, 도전정신을 갖도록 키워 주신 덕분에 이룰 수 있었다.
남들이 '겨우 기사 1급 시험 합격한 걸 갖고...?'라고 할지 모르나, 반딧불처럼 깜빡깜빡하는 기억력에 나빠진 시력으로 돋보기를 썼다 벗었다 해야 하는 나이에 정말 최선을 다해서 공부하고 봤던 시험이다. 원 없이 공부해봤다. 아내와 아들, 식구들 앞에서 떳떳해질 수 있어서 좋다. 회사에서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 나를 보며 힘내서 공부할 수 있도록 돼서 기쁘다. 세 가지 일 - 직장인으로 회사 일, 강사로써 강의, 시민기자로 기사 작성 동영상 촬영 편집 등 - 을 하며 동시에 공부해 이룬 2020년 가장 큰 성과다. 시험 발표 후 다시 글을 쓰고 책을 읽는다. 제일 먼저 집어 든 책 '장자', 노자와 같은 듯 다른 장자의 세계에 빠져 지낸다.
진나라 평공이 "내 나이 일흔이니 공부하기에는 해가 이미 진듯하다."라고 말했다. 이 말을 들은 사광이 “젊어서 공부를 좋아하는 것은 막 떠오르는 해와 같고, 장년에 공부를 좋아하는 것은 중천에 뜬 해와 같으며, 늙어서 공부를 좋아하는 것은 저녁에 촛불을 밝히는 것과 같다." 면서, "촛불을 밝히고 가는 것이 어찌 캄캄한 길을 가는 것과 같겠는가?"라고 했다. 아직 내 나이는 진나라 평공처럼 일흔이 못 되었으니, 책 읽기를 멈추지 않는다. 여든이 넘어서도 책을 읽으셨던 엄마와 아버지 모습이 그립다. 아들은 부모님을 보면서 또 부모가 되어 감을 체감하며 살아간다. 나도 내 아들에게 모범을 보일 수 있는 아버지이고 싶다. 촛불을 켜고 열심히 사는 이유다. 가을처럼 아름답게 익어가다가 곱게  흰 눈이 쌓인 겨울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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