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Jan 16. 2024
서울 용산구, 중학생이던 아들과 우리 부부가 함께 삼각지에 있는 전쟁기념관에 갔었다. 그러곤 까맣게 있고 있다가 가끔 '어서 와 한국은 처음이지' TV프로그램을 통해 전쟁기념관을 봤다.
해군 장교로 입대한 아들이 국방부에서 의무복무를 할 때 퇴근하는 아들을 만나러 국방부에 갔다가 국방부 앞에 전쟁기념관이 있는 걸 보며 반가웠다.
중학생이던 아들과 갔던 곳으로만 기억하던 곳이 아들의 근무처 앞이 되는 것처럼,
내가 공군장교로 복무하면서 감히 가볼 엄두도 못 냈던 국방부를 아들 덕분에 면회실이나마 가 볼 수 있었던 것처럼,
살다 보면 나와 아무런 관련이 없던 어떤 장소가 어느 날 갑자기 의미가 있는 장소가 된다.
서울 영등포구는 어릴 때 아버지 손을 잡고 서울 외갓집에 갈 때 기차 타고 지나치던 역이었다.
영등포구 역시 아들 덕분에 의미 있는 곳이 되었다.
군 복무 중이던 아들이 관사로 살던 해군 바다마을아파트가 영등포에 있었기 때문이다.
거의 두 달에 한 번씩 영등포구에 있는 해군아파트에 아들을 보러 오갔다.
군복무를 마치고, 다시 서울대 박사과정에 복귀한 아들이 살 집을 학교 가까운 곳에 미리 구해야 했다.
2022년 초, 대통령 선거가 있기 전 서울 아파트 가격은 높았다.
집을 사러 다닐 때 부동산에서 "지금은 고점인 아파트 가격이 앞으로는 내려갈 추세니, 전세를 얻는 게 어떠냐?"라고 권유를 했다.
2년 계약으로 전세를 얻어 살게 된 빌라는 해군 아파트 근처였다. 빌라에서 살기 시작한 지 1년이 지나자, 전세를 2년 더 연장할 것인지, 아니면 좀 더 학교 가까운 곳으로 옮길지 고심을 시작하고 있었다.
공부에 집중해야 할 아들이 집 때문에 방해받지 않고 안정적으로 살 수 있기를 바랐다.
2023년 10월, 아내와 함께 서울 아들집을 방문했을 때, 아들이 "아파트 급매가 나왔는데 지금 세 들어 사는 곳에서 멀지 않다"는 말을 했다.
당장 부동산에 연락하고 함께 아파트를 보러 갔다.
아들이 마음에 들어 했고, 아내도 좋다고 했다.
아들과 아내가 좋다면 나도 싫을 게 없었다.
2023년 10월 가계약과 본계약 후 2024년 1월 15일 잔금을 치렀다. 잔금 마련까지 우여곡절이 있었으나 그래도 별 어려움 없이 마쳤다.
이로써 아들은 태어나 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으로 된 아파트를 영등포구에 갖게 됐다. 당장 이사를 하는 건 아니다. 아파트 도배를 다시 하고, 젊은 아들 취향에 맞게 손을 봐야 한다.
또한 현재 살고 있는 전셋집의 전세 보증금을 받으려면 계약기간까지 빌라에 살아야 HUG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다.
이사가 좀 늦으면 어떤가? 안정적인 집, 아들이 안심하고 살 아파트가 생겼는데...
이 집을 바탕으로 아들이 안정된 상태에서 행복하게 살면서 자신의 꿈을 이루어 나갔으면 좋겠다.
자신의 이름으로 된 아파트를 갖게 된 아들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이사를 하는 날 다시 방문해서 축하파티를 해줄 예정이다.
시나브로 혼자 힘으로 살아갈 능력을 키워가는 아들, 서울대박사라는 날개를 달고 이 세상을 훨훨 날며 살아갈 아들을 응원한다.
해군관사로 인연을 맺은 영등포구, 앞으로 또 어떤 인연이 이어질까, 더 좋고 행복한 추억이 영등포구에서 생기길 바란다.
이런 게 바로 삶 속에서 행복 찾기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