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1박 2일 여행을 간 일요일이다. 잠에서 깨어서도 베개에 머리가 붙은 듯 느긋하게 누워 뒹군다. 뒹군다 해도 겨우 방바닥에 깔린 매트리스 크기만큼이다.
혼자 자며 보일러를 오래 켜 놓는 것이 낭비처럼 느껴져 새벽에 화장실 갔다 올 때 꺼버린 보일러로 인해 바닥이 차갑다.
충전이 끝난 스마트폰을 들고 George Frideric Händel의 Oratorio 'Sarabande(사라방드)'를 찾아 튼다. 계속해서 Sarabande에 그리스시인 Nikos Gatsos가 노랫말을 붙인 'Gloria Eterna(영광의 찬가)'를 Nana Mouskouri(나나 무스쿠리)의 노래로 듣는다.
음악에 취해 있다가 목마름을 느낀다. 움직이지 않으니 물 한 모금 입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홀로라는 건 자유로운 대신 내가 나를 책임져야 한다. 목마름을 참고 두 시간쯤 더 누워서 음악을 듣다가 일어나 물을 마신다. 손을 움직여 준비한 음식으로 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 '먹었으니 움직여야지.' 먹고 움직이지 않으면 그대로 살로 가서 몸이 무거워진다.
손은 머리보다 작고, 가슴보다 작으며, 심지어 발바닥보다도 작다. 그러나 손은 자신보다 큰 몸통과 다리, 머리를 먹여 살린다. 한없이 게으른 마음을 움직여 내는 것도 손이다.
손은 천년을 살아 구부러지고 파여도 가락을 잃지 않는 오동나무를 닮았다. 주름지고 거뭇거뭇 저승꽃이 피어있는손, 손톱이 갈라져 가시처럼 되어도 손은 마지막까지 제 할 일을 멈추지 않는다. 나는 손과 같은 사람이 되고 싶다.
호수로 나가 연을 날리고 애완견과 함께 노는 사람들을 본다. 호수를 끼고 걷는다. 바람이 차도 손을 호주머니에 넣지 않고 노를 젓는 것처럼 힘차게 저으며 걷는다.
바닥에 깔린 야자 매트를 밟다가 마주 오는 사람을 피해 흙을 밟는다. 흙이 눈처럼 뽀드득 소리를 낸다. 흙이 내는 소리를 노래 삼아 걷는 길, 아침에 들었던 Sarabande의 묵직한 소리가 귓전에 흐른다.
호수에 담긴 물이 웅장하게 다가온다. 호수에 뜬 오리가 멈춰 선 듯 움직인다. 오리는 오케스트라 앞에 선 지휘자처럼 부지런히 발을 젓는다.
호수를 두 바퀴 돈 후, 호수 옆 도서관에 들른다. 문학으로 분류된 책이 꽂혀있는 800번대 서가에서 아무 책이나 빼서 읽는다.
피천득 시인의 수필 '인연'을 읽었다. ⎾그리워하는데도 한 번 만나고는 못 만나게 되기도 하고, 일생을 못 잊으면서도 아니 만나고 살기도 한다. 아사코와 나는 세 번 만났다.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글을 읽고 창문 너머로 보이는 호수를 보며 생각에 잠긴다.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거라고 후회할지라도 나는 만날 수 있으면 만나고 싶다.' 그리워만 하기보다는 차라리 후회하는 것이 더 낳을 것 같다.
그리움은 갈증과 같다. 참기 힘든 갈증은 물로만 해결된다. 그리움도 만남이 있어야 사라진다. 만나서 다시 헤어지고 더 큰 그리움에 잠긴다고 하더라도 나는 네 번 다섯 번이라도 후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