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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Apr 26. 2016

KTX 플랫폼에서

먼 길 와 줘서 고맙다.
미소 띤 얼굴로 보내지만 떠나니 아쉽다.
언제까지나 내 품에 품고 있으면 좋으련만,
그러나 떠나보내야 하는 이치대로 살 수밖에.
내 가슴에는 너의 온기가 아직 그대로인데….
차디 찬 유리 창가에 기대앉아 손을 흔드는 너의 모습이 가슴을 저민다.

나는 몰랐다.
네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우리 집에서 날마다 함께 머무른 시간이 그리도 귀한 시간이었는지를…. 고등학생 때는 기숙사로,
대학생인 지금은 서울로 떠나가는 너를 부여잡지 못 하고,
죄 없는 기차 탓만 하고 있을 수밖에 없음을 이제서야 안다.

아~~ 요즘 기차는 '뚜우~' 기적 소리마저 없이 슬그머니 떠나가는구나.
빈 플랫폼에 빈 의자와 슬픈 나만 덩그러니 남겨 두고 기차는 떠났을지라도,

기적 소리라도 남았다면 그 소리에 기대어 나도 너처럼 비스듬히 앉아 있을 수 있었을 텐데...
우두커니 홀로 서서 두 갈래 철길을 눈으로만 쫒아 갈 뿐 아무것도 할 수 없음에 슬픔을 느낀다.

사랑하는 아들아!
너는 아빠처럼 지방에 살지 말거라.
자식을 서울로 떠나보내는 아픔이 행여 여리디 여린 네 가슴에 자국을 남길까 걱정된다.
그 쓰린 자국은 온전히 나의 몫으로만 하고 싶다.
네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가까이 살며 기차 떠난 빈자리에 쓸쓸하게 홀로 남는 이별의 아픔을 겪지 말기를 바란다.
그저 날마다 행복하게만 살거라.

다른 기차가 들어온다는 안내 방송이 들리는구나.
지금 들어오는 기차에는 어떤 이들이 떠나고 또 어떤 이들이 남을까?
어느 오후 바람에 흩날리는 꽃잎만 남겨 두고 슬그머니 우리 곁을 떠나버린 봄처럼,
슬픈 이별만 폴폴폴 날리며 그렇게 다시 떠나가는 건 아닐는지...

플랫폼으로 들어오는 기차를 보며 알았다.
또 다른 어느 날 너는 내 곁에 와 줄 거라는 것을….
그때는 이 플랫폼 빈 의자 옆에 설레는 마음으로 서 있을 수 있겠지.
너를 싣고 오는 기차가 아무리 빨라졌다고 해도 느리게 느끼면서….



기차는 8시에 떠나가네 ㅡ 조수미
http://youtu.be/PS_CMdrNCjc

To Treno Fevgi Stis Okto ㅡ Agnes Baltsa
http://youtu.be/8SAaqmvga1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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