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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Mar 02. 2016

바이칼 호수와 생텍쥐페리 어린 왕자의 석양

한국 시각 오후 5시 45분. 20분 늦게 이륙했으니  3시간 25분째 하늘을 날고 있다.
음료와 기내식을 먹고 신문과 TV를 보면서 제법 많은 시간이 지났을 거라 생각하며 시계를 봤더니 겨우 3시간이 넘게 흘렀다. 앞으로도 9시간 정도를 더 가야 한다.

여행사에서 귀띔해준 대로 공항에 일찍 도착하여 비상구를 앞에 둔 좌석을 요청해서 배정받아 앉았다. 앞을 막고 있는 다른 좌석이 없으니 발을 뻗기에도 편하고 이동도 자유로워서 좋다. 좌석이 비상구 앞이기도 하지만, 승무원들이 음식과 음료를  서비스하는 옆이기도 해서 승무원들의 움직임도 자연스럽게 볼 수 있다. 쉴 틈 없이 일을 하는 승무원들의 모습을 보니 차마 우리마저 이것 달라 저것 달라 요구할 수 없어서 요구사항을  최소화했다.


아내와 이야기를 하다가 좌석 앞의 디스플레이를 통해 비행경로를 보았더니 비행기가 바이칼 호수 위를 지나가고 있는 게 아닌가?
얼른 창문 덮개를 열고  내려다보니 바다 같은 호수가 어둠 속에서도 땅과 경계를 이루며 나타났다.
아~ 바이칼! 내가 우연히  비행경로를 본 것이 아니었구나, 하늘 아래 바이칼이 나를 불렀고 나는 그에 응답을 했을 뿐이었구나.
차를 타고 직접 호숫가로 가 보고 싶은 곳이다. 언젠가 내가 가 볼 수 있을까? 지금은 하늘 위에서 TV를 통해 보았던 바이칼 호수의 맑은 물을 상상해 본다. 얼음처럼 차가운 호숫물이 마음으로 느껴지니 마음이 시리다.

태양을 향해 맨 몸으로  날아올랐던 이카로스는 어떤 기분이었을까? 구름 위 하늘에 있는 지금 내가 이카로스의 마음을 엿볼 수나 있을까? 그랬으면 좋겠다.
이카로스가 날아 올라 이루고자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하늘 더 높이  날아오르면 구름 위에 떨어진 이카로스의 잃어버린  날개깃을  찾아볼 수 있을까?

비행기는 서쪽으로 서쪽으로 지는 해를 따라 석양을 쫒아 가고 있다. 몇 시간째 창밖으론 석양만 보이고 있다.
몇 번이고 뒤로 물러서며 석양을 43번이나 보았던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가 생각난다. 어린 왕자도 나처럼  발아래 하얀 구름을 보면서 구름 위로  뛰어내리면 솜이불같이 푹신하게 날 받아줄 것 같은 유혹을 느꼈을까?
'밤에 하늘을 바라면 내가 그 별들 중의 하나에서 웃고 있겠다'던 어린 왕자는 지금 어느 소행성에서 소중한  장미꽃을 위해 시간을 보내고 있을까?

그나저나 비행기도 버스처럼 휴게소에서 쉬었다 갔으면 좋겠다. 하늘에 휴게소가 생긴다면 어떤 모습일까?

에고고, 아들 만나러 가는 길이 멀다.
이제 절반 왔네. 앞으로도 여섯 시간을 더 가야 해... ㅠ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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