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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규석 마샹스Machance Jun 26. 2016

네 일, 내 일, 어머니!

네 일 일 때는 그저 아무것도 아니었다.

억지 춘향처럼 슬픈척하거나, 안타까운척하면 될 일이었다.

너의 눈을 마주 보며 잠시 말을 멈추고 함께 호흡을 맞추면 되는 일이었다.     


내 일이 되고 보니 그것은 내 몸과 마음의 일이었다.

저절로 눈물이 나고, 애절하여 어느 것 하나에도 마음 붙이고 집중할 수 없었다.

시간은 멈추어 서고, 그림자마저 사라져버린 어둠에 홀로 서서 떨어야 함이었다.     


부고를 받고 뛰어 온 친구가 “사람은 누구나 겪는 일이라고, 처가까지 합해서 적어도 네 번은 겪어야 할 일”이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해주었다.

그래, 나도 남의 일, 네 일 일 때는 그렇게 말할 수 있었다.

그러나 내 일이 되고 보니 누구나 겪는 일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집안을 든든히 받쳐주는 대들보 같은 존재라면,

엄마는 기둥까지 덮어 안은 지붕이 아닐까?

눈, 비, 뜨거운 햇볕으로부터 가족을 보듬는 지붕…….

지붕, 하늘이 무너져버린 일상을 맨몸으로 살아내야 할 일, 그것이 바로 내 일이었다.

네 일, 내 일, ㆍ점 하나를 옮겨 내 몸 안에 찍으니 그것은 내 온몸을 감고 도는 살붙이, 피붙이의 일이었다.

내 일이 되고서야 나의 피와 살이 온전히 어머니의 혼이었음을 머리로만 알던 것을 가슴으로 알게 되었다.     


어머니!

어머니는 자식들을 언제나 무조건 응원하고 지지해주는 고향 뜰이었습니다.

장독대가 햇빛을 받아 반짝이던 날, 확독에서 고추를 갈아 담근 김치를 길게 찢어 입에 넣어주시던 어머니의 손맛은 우리들의 입맛이 되어 남았습니다.

앉은뱅이 상에 둘러앉아 제비처럼 입 벌리고 기다리던 우리에게 주전자 뚜껑으로 잘라내어 만든 동그란 도넛은 엄마의 함박 웃는 모습이었음을 기억합니다.

‘살짝이 옵서예’라는 노래를 수줍게 부르시던 소녀 같은 모습도 생각납니다.

아들, 딸, 며느리, 사위, 손주들 - 온 가족이 함께 모이면 너무나 행복해 하시던 어머니.

식구들 자주 모여 어머니께서 남겨 주신 모든 기억들을 가슴으로 추억하는 일이 내 일입니다.


이제 어머니는 가시고, 나만 홀로 남았습니다.

언제라도 힘들면 내 마음에 와서 쉬어 가라고 반겨주시던 어머니!

더는 힘들어도 뛰어가 마음 기대고 쉴 곳이 없습니다.

더는 어머니의 모습을 뵐 수도,

'엄마'하고 부르면 '오냐'하시며 대답하시는 음성도 들을 수 없어 슬픕니다.

되돌릴 수 없는 시간의 야속함에 흐르는 눈물을 어머니 영전에 바치오니,

오늘 밤 꿈속에 살포시 왔다 가시면 안 될까요 어머니?

그리하시면 어머니 없는 아침이라도 힘내어 다시 일어설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불효자식이 어머니가 보고 싶습니다.

어머니의 생신 축하

아버지의 생신 축하

나주 금성산 차밭에서

충북 청원군 청남대에서

나주 다도댐 근처 식당에서

경남 거제시 수련관에서


<Mother of mine - Jimmy Osmo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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