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사 컨텐츠를 다루면 혐일을 해야한다?

사사록 私思錄 2 혐오는 멈춰지지 않는다.

by 동닙

나는 독립운동가를 그리고, 그들을 알리는 일을 하고 있다.

IMG_8771.jpg 2024년 임시정부기념관 기획전



어떤 이들은 나에게 존경과 응원을 보내주고, 또 어떤 이들은 비난을 한다. 누군가는 나에게 의견을 전하고, 누군가는 첨언을 남긴다.

의견을 제시하는 건 자유다. 다만 욕설이나 악의적인 댓글은 삭제하고 차단한다. 완벽히 멸균된 공간을 만들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방관할 생각은 없다.


나는 여러 채널에 내 그림과 글을 공유한다. 그것은 홍보이자 기록의 일환이다. 다양한 반응이 달리고, 그중엔 오래 기억에 남는 일화도 있다.


어느 날, 어떤 사람이 댓글을 남겼다.


“일본은 멸망해야 한다. 일본인은 다 죽여야 한다.

일본 여행을 가는 사람, 일식을 먹는 사람, 일본인과 결혼하는 사람은 모두 벌레다.”


그의 말은 나를 향한 듯했고, 마치 나도 그 생각에 동조하길 기대하는 듯했다. 아마도 내가 독립운동가를 주제로 그리니까 자연스럽게 그리 생각했을 것이다.


나는 그 사람의 개인적인 사연을 모른다. 하지만 분명한 건, 그의 생각과 나는 다르다는 것이다.

나는 일본의 멸망을 바라지 않는다. 북한과 전쟁으로 통일되길 바라지도 않는다. 중국의 붕괴를 기대하지도 않는다.


내가 바라는 것은 아시아의 평화다. 전 세계의 화합이다.

각 나라가 올바르게 발전하고, 서로 화합하며, 문화적으로 교류하는 세상이다. 정치가 대립하더라도 민간의 문화 교류는 끊기지 않아야 한다고 믿는다.


일본의 만행을 기록하는 일은 중요하지만, 내가 하고자 하는 일의 중심은 ‘독립운동가를 알리는 것’이다. 그들의 용기와 사상을 오늘의 언어로 전하는 일. 그것이 나의 목표다.


몇 해 전 ‘노 재팬(NO JAPAN)’ 운동이 벌어졌을 때, 나는 참여하지 않았다. 일본 제품을 특별히 쓰지 않아서라기보다, ‘불매’가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지 않아서다. 일본차를 부수거나 일식집을 공격하는 일은, 결국 혐오가 낳은 또 다른 폭력일 뿐이다. 혐오는 자유가 아니다.


표현의 자유는 중요하지만,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는 순간 그것은 더 이상 자유가 아니다. 나에게는 내가 지키고 싶은 선이 있다.


젊은 세대가 서로 여행하고, 문화를 나누고, 서로를 더 자주 알아가길 바란다. 역사를 풀어내는 가장 큰 힘은 결국 '이해'와 '소통'이라 생각한다. 《미스터 션샤인》, 《파친코》, 《소년이 온다》 같은 작품들은 그 이해의 출발점이 되었다. 한국의 역사와 정서를 일본 사람들에게 자연스럽게 전한 문화의 힘. 그런 힘이 진짜로 강하고 또 가치 있다.

솔직히 한국의 대중문화는 한때, 90년대까지만 해도 일본의 영향 아래 있었다. 드라마, 예능, 음악, 포맷이 대부분 일본에서 왔다. 하지만 이제는 반대다. 한국은 문화적으로 우위에 있다. 아름다움과 예술로 소통할 수 있다.


나는 언젠가 독립운동가를 기념하는 통용화폐가 발행되길 바란다. 그것은 힘의 과시가 아니라 진짜 과거청산의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이제 비교와 피해의식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다.

일본의 과거를 용서하거나 잊자는 것이 아니다. 사과는 여전히 받아야 하고, 왜곡에는 지속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하지만 혐오는 그 어떤 해결책도 아니다. 혐오는 이어진다. 단지 대상만 바뀔 뿐이다.

인터넷이란 공간에서 혐오를 완전히 막을 순 없다. 하지만 나의 공간에서 그 혐오를 방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혐일은 반일이 아니다.

혐중은 반중이 아니다.


혐오는 결국 인간에 대한 혐오일 뿐이다.

나는 역사속 사람을 기억하고, 자유를 그리려 한다.

작가의 이전글美 미니애폴리스에서 ICE총격 세아이의 엄마 사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