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내게 필요한 장자. 이제 나는 나를 죽였다

사사록 私思錄 10 이제 나는 나를 죽였다 (今者吾喪我)

by 동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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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자는 말했다.

성인은 시시비비를 따지지 않고, 하늘의 이치에 비추어 산다.
(聖人不由是非 而照之於天)


곧, 진정 지혜로운 사람은 옳고 그름을 집요하게 가르기보다 더 큰 질서, 자연의 흐름 속에서 자신을 놓는다는 뜻일 것이다.

인간이 만든 기준은 언제나 불완전하고, 각자의 삶과 경험은 서로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우리는 일상에서 자주 시시비비를 따진다. 누가 옳은지, 누가 틀렸는지, 이것은 정의고 저것은 불의라고 말한다.(물론 명백한 범죄나 폭력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다.)

그러나 그 경계를 집요함으로 넘어서는 순간, 옳고 그름을 가르는 말들은 사람과 사람 사이에 금을 만들고, 관계는 조금씩 멀어진다.


사람마다 옳다고 믿는 기준은 다르다.

누군가에게는 상식인 것이, 다른 누군가에게는 전혀 공감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종종 자신의 기준을 상대에게 설명하려 들고, 설득하려 들고, 결국은 강요한다.


상대를 바꾸려 하기보다, 그 사람을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일.

다름을 인정하고, 굳이 말로 결론을 내리지 않아도 이해하려는 태도.

어쩌면 그것이 더 어렵고, 그래서 더 필요한 자세일지도 모른다.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이것이다. "너는 나와 다르다."


우리는 서로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


장자는 말한다.

이제 나는 나를 죽였다.
(今者吾喪我)


한자에서 ‘나’는 두 가지로 나뉜다고 한다.

독립된 주체로서의 나, 吾(오). 타인과의 관계 속에서 규정되는 나, 我(아).

장자가 죽이라고 한 것은 '我(아)'이다.

비교하고, 대립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려 드는 나.

이 我를 내려놓을 때, 타인과의 대립 구도 자체가 성립하지 않게 된다.

비교할 기준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것은 자기를 부정하라는 말이 아니다.

비움의 지혜다.


고정된 관념, 아집, 자기중심적인 시선에서 한 발 물러서는 일이다.

내가 옳다는 확신을 잠시 내려놓는 것, 그 고집을 놓아주는 것. 우리는 종종 나의 기준이 옳다고 믿기 때문에 타인과 부딪힌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장자는 말한다.

진짜 자유와 평온은 바로 그 ‘나’를 내려놓을 때 찾아온다고.

생각해보면, 내가 나라는 틀 안에 꽉 차 있을 때는 새로운 사람도, 새로운 생각도, 새로운 감정도 들어올 자리가 없었는지도 모른다. 나를 조금 잃었기에, 비로소 타인을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장자는 이 상태를 오상아(吾喪我)라 불렀다.

보내야 했던 것은 타인이 아니라, 내 안의 고집스러운 자아였다.


공자 역시 비슷한 말을 남겼다.

“四問而四不知.”

네 번 물었으나, 네 번 다 모른다고 답하라는 말이다.


이는 단순히 알고 모르고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아는 것이 아니라, 상대의 이야기를 듣는 것. 그 겸허함이 오히려 타인의 마음을 연다는 뜻이다.


약자에게서도, 후배에게서도, 심지어 자식에게서도 우리는 배울 수 있다.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무시하지 않고, 그 다름 속에서 나에게 없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내 생각을 앞세우는 대신, 타인의 생각을 듣는 연습.

그 과정을 통해 우리는 관계 안에서 성숙해지고, 역설적으로 나 자신은 더 단단해진다.


이 글은 어려운 철학 이야기라기보다, 지금 이 시점의 내 삶, 내 신변에 대한 기록이다.


요즘 내가 배워야 할 것은 하나다.

나를 비우는 연습.

모든 답은 결국 밖에 있지 않고, 이미 내 안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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