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비가 지켜낸 덕이라는 신념. 재소환 되는 울보왕

사사록 思私錄 23 견디는 힘. 유비의 리더십

by 동닙

최근 여러 역사학자와 인플루언서들의 삼국지 해석을 보면 흥미로운 흐름이 보인다.


한동안 조조에서 사마의로 이동하던 대세론이 다시 유비로 돌아오는 느낌이다.

이것은 단순한 인물 재평가라기보다,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가 달라졌다는 신호라고 생각한다.


삼국지연의는 늘 시대를 비추는 거울처럼 읽혀지고 해석되어 왔다.

내가 삼국지를 처음 접했을 때는 유비 대세론의 시대였다. 의형제로 맺어진 관우와 장비, 주군을 위해 단기필마로 창을 휘두르던 조자룡, 모든 것을 바쳐 산화한 제갈량이 중심에 있었다. 유비는 약했고 자주 도망쳤지만, 끝까지 의와 명분을 붙잡은 군주로 그려졌다.


그러다 2000년대에 들어 조조 다시 보기가 시작되었던 걸로 기억한다.

조조는 간웅이라 불릴 만큼 현실적이었다. 필요하다면 냉혹했고, 인재 등용에는 출신과 명분을 따지지 않았다. 무엇보다 아들 조비에게 국가의 틀을 넘겨주며 위나라의 기반을 만들었다. 결과를 만들어낸 군주, 시스템을 남긴 지도자라는 평가가 힘을 얻었다.


2010년을 넘어서며 시선은 사마의로 이동했다. 사마의는 이기기보다 버텼고, 앞서기보다 기다렸다. 제갈량은 늘 주목받았지만, 실제 전개를 보면 사마의를 결정적으로 꺾은 적은 거의 없다. 결국 그의 자손이 진나라로 천하를 통일했다. 성공과 기다림이라는 공식 속에서 사마의는 매우 현대적인 인물로 재해석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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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최근 다시 유비가 소환되고 있다.

통일이라는 결과, 승자라는 지위보다 그 과정에서 무엇을 선택했는지가 다시 질문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이 변화의 배경에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의 변화가 있다. 인공지능은 인간보다 빠르게 판단하고, 더 효율적으로 사람을 대체한다. 정치에서는 극단이 일상이 되었고, 상대를 설득하기보다 공격하는 것이 전략이 되었다. 서로를 이해하고 배려하는 것보다 대화조차 단절되어가고 있다.


기업 역시 비슷하다. 약자를 보호하겠다는 말은 많지만, 실제로는 플랫폼과 알고리즘 뒤에 숨어 더 많은 노동을 더 싼 값에 쥐어짜는 구조가 확산되고 있다. 법을 어기지 않았다는 이유로 모든 착취가 정당화된다. 이익은 위로 쌓인다. 부가 아래로 흐르는 것이 아닌 책임과 노동만이 아래로 흘러간다.

지금은 능력과 결과가 중요하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사회가 유지되지 않는다.


유비가 특별했던 이유는 강해서가 아니다. 늘 패했고 늘 부족했다. 그럼에도 백성들이 그를 따라 도망쳤다. 함께 가다 죽을 수 있다는 걸 알면서도 떠나지 않았다. 그가 내세운 것은 승리가 아니라 사람을 버리지 않겠다는 태도였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도 그 것이다.

덕과 인은 고전적인 미덕이 아니라, 여러 상황이 인간을 밀어낼수록 더 절실해지는 최소한의 안전장치다. 효율과 성공만을 쫓는 사회에서, 끝까지 사람다움을 기준으로 삼겠다는 다짐이다.


유비가 다시 불려 나오는 이유는 명확하다.

우리는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성공을 위해 달려오기만 한 지금. 모든 것이 극단으로 달려가는 지금.

실패하더라도 견디는 힘, 그리고 그 과정에서 포기하지 않는 덕과 인의 가치가 지금 가장 필요하기 때문이다.


흔히 삼국지에는 악역이 없다고 말한다. 그저 한 시대를 살아간 인간 군상들의 이야기이다.

권모술수가 일상이던 시대에 누구를 본보기로 삼을지는 각자의 선택이다. 그것은 책을 읽는 사람에게 허락된 상상의 자유이자 해석의 특권이다.

조조를 택해도, 사마의를 따르더라도, 유비를 돌아보더라도 틀린 선택은 없다.


다만 수많은 시대를 건너온 고전이 반복해서 말해주는 것은 하나다. 제도도, 권력도, 전략도 결국은 인간이 기본으로 세워진다는 사실이다. 그래서 삼국지는 끝내 인간의 이야기로 남는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도 답은 여전히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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