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사록 思私錄 24
이란의 아이들이 오폭으로 사망했다는 소식을 보고
한국인이 슬픔을 담아 글을 썼다.
그 글에 한 이란인이 댓글을 남겼다.
댓글을 단 사람에게 화도 났고, 동시에 동정심도 생겼다. 그리고 슬픔까지 뒤섞였다. 마음이 복잡했다.
이런 상황이 그저 낯설지만은 않았다
일본이 원폭으로 패망했을 때,
원폭 피해를 입은 일본 민간인들을 애도하는 목소리를 보며 어떤 한국인들은 이렇게 말한다.
일본에게 모든 것을 빼앗기고 학대와 학살을 당한 조선인은 생각하지 않는가?
일왕과 군국주의 정치세력의 악행 때문에 아무 관련 없는 시민들이 원폭의 희생자가 되었을 때,
그들을 애도하는 사람은 무지하거나 위선적인 사람으로 매도되어야 할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그 애도는 일본 제국을 향한 것이 아니다.
전쟁에 휘말려 죽어간, 아무 관계 없는 사람들에 대한 슬픔과 분노일 뿐이다. 그래서 그들을 애도하는 것이다.
일제가 조선인에게 무엇을 했는지 몰랐다고 가정하더라도, 혹은 헤메나이가 독재로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는 사실을 몰랐다고 하더라도, 전쟁 속에서 죽어간 민간인을 애도하는 마음 자체는 틀리지 않다.
물론 그것을 정치의 언어로 끌어와
“그것도 모르면서 어떻게 애도할 수 있는가”
“왜 이전의 희생자들에 대해서는 슬퍼하지 않는가”
라고 따지는 마음 역시 이해는 간다.
그들의 상처를 생각하면 그 심정을 모른 척하기 어렵다.
하메네이는 분명 최악의 독재자다.
이란 국민들의 자유를 억압했고, 시위대를 학살하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미국이 마음대로 그를 제거할 권리가 있는가.
압박을 가하고 제재를 강화할 수는 있을 것이다. 하지만 폭격을 가해 지도부를 제거하고 나라 전체를 전쟁터로 만들어 폐허로 만드는 것이 정당화될 수 없다.
헤메나이가 죽었다는 소식이 퍼졌을 때, SNS에는 “트럼프”를 외치며 춤을 추는 이란인들의 영상도 많이 올라왔다. 그것을 보며 마음이 복잡해졌다.
미국은 앞으로도 이란에 개입할 것이다. 원유를 둘러싼 이해관계 역시 계속될 것이다.
“민주주의를 심어주겠다”는 명분 아래 경제와 정치가 깊게 간섭받게 될 가능성도 크다.
지도부 구성에까지 관여하겠다고 공개적으로 말했으니,
어떤 형태로든 사실상의 종속 상태가 될지도 모른다.
민주주의는 누가 떠먹여 주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결국 사람들의 피와 희생 위에서 자라난다.
한국이 오늘날 민주주의의 가치가 강하게 빛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독립을 위해 피를 흘렸고, 전쟁 속에서 체제를 지켰으며, 또다시 피를 흘리며 군사독재와 싸워 민주주의를 쟁취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알고 있다.
반대로 일본이 전후 극우 정치에 쉽게 흔들리는 이유 중 하나는, 민주주의가 미국에서 이식된 체제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스스로의 열망으로 쟁취한 경험이 부족했기 때문이다.
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왕정의 경험 없이 태어난 나라라는 점 때문에 권력의 상징과 카리스마에 유독 취약한 면이 있다고 나는 개인적으로 생각한다. 시진핑과 푸틴같은 강한 독재자를 선망하는 국민들도 있다.
그래서 그 결과가 트럼프였다.
SNS에서 마주한 쇼츠.
아이들의 죽음을 둘러싼 분노와, 독재자의 죽음을 환호하는 쇼츠들은 많은 생각을 남겼다.
다만 한 가지 바람은 분명하고 확고하다.
이 혼란스러운 시대가 하루라도 빨리 정리되어, 적어도 사람들이 서로를 향해 무기를 드는 일만큼은 더 이상 일어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