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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 Aug 21. 2022

기억이 난다,로 시작하는 글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기 2

기억이 난다. 어제 광화문 광장을 걸었던 게 기억난다. 아주 귀엽지만 아주 큰 물방울 같은 화분에 심어져 있던 작은 나무들이 햇빛에 쨍쨍 말라가던 게 기억이 난다. 

광화문 월대 공사로 광화문 갈 때 약간 빙 돌아가는데 그 길의 곡선이 참 인상적이어서 기억이 난다. 

또 밤에 광화문 근처를 걸어서 집에 왔던 지난 달 독서모임이 기억난다. 밤에 누구랑 함께 걸은 지가 너무 오래 되기도 했다. 그날은 참 선선하고 밖에서 맥주를 마셔도 좋을 정도로 아직 덥지 않았다. 지금은 야외에서 뭘 한다는 게 너무 무서울 정도로 덥다. 더위는 영원히 안 없어질 것 같다. 그러다 또 더위가 사라지고 추위가 찾아온다는 걸 알면서도 지금은 이 상황이 안 끝날 것 같다. 

이 생각을 하니까 내가 옛날에 의학상식을 가르쳐주는 수업 시간에 엉뚱한 대답을 했던 게 생각난다. 의사들인지 수련의들인지가 과를 바꿔가면서 한 명씩 와서 해주는 수업이었는데 그 사람이 자기는 안 죽을 것 같은 사람 손들어 보세요, 라는 의례적 질문을 했는데 내가 손 들었다. 그 사람이 찾아와서 왜 그러냐고 했는데, 내가 매일 아침이 되면 일어나는 걸 보니까 영원히 안 죽고 계속 아침에 일어날 것 같아서라고 대답했다. 지금 생각하면 너무 웃기지만, 그때는 이렇게 삶이 영원히 지속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있었다. 그때 우리과 후배가 그걸 듣고 참 독특한 선배라고 생각했었다고 나중에 이야기해줬는데 내 말을 귀기울여 들어줘서 참 고맙긴 했다. 

그 의사선생님은 내 말을 듣고 아무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위험한 학생으로 보이지 않았을까? 요즘 같았으면 어디 상담실로 끌려갔을 것 같다.

그런데 마음공부에서는 지금 이 순간을 살라고 한다. 항상 깨어 있고 이 순간에 집중하라고 한다. 나도 매일 순간에 집중하다보니까 안 죽을 것처럼 생각됐었다. 지금은? 지금은 내가 언젠가, 가까울 수도 있고 멀 수도 있는 미래에 죽을 수도 있다는 걸 알고 있나? 잘 모르겠다. 지금도 이 상황이 계속될 것 같다는 느낌은 있고 누구나 그렇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니까 '다 지나가리라'같은 말에 사람들이 그렇게 감동한 것 아닐까?

이 말을 떠올리니 또 우리 옛날 회사 사장님이 우리한테 '다 지나가리라'는 말이 있으니 힘내라고 이사님을 통해 전달했던 게 생각난다. 참 특이한 사장님이었다. 회사 사정이 개떡같아도 다 지나갈 테니 너희들도 참아라. 하면서 모든 사업을 말아먹은 게 도대체 얼마 동안 진행됐던 건지. 모든 게 지나간다는 말을 생각하면 참 위안이 되기도 한다. 또 좀 자각을 하게 되기도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머리로 아는 거지 진짜로는 잘 모르는 것 같은데 내가 철이 안 들어서인지. 

교당 회장님은 가끔 생사를 초월하면 어려울 게 없다고 한다. 불교에서는 윤회를 믿기도 하고, 잘 살고 죽어야 또 사람이 되어서 태어날 수 있다고 하니까. 생사를 초월할 수 있는 사람이 근데 진짜 있는 건가? 생명은 소중한 건데. 누가 죽어달라고 하면 대신 죽어주는 것도 생사를 초월하는 건가? 생사를 중요하게 생각하니까 우리가 이 모든 시비이해를 가리는 것 아닌지. 아직 수행이 짧아서인지 절대 이해가 안 간다. 

내 첫 기억은 우리집 마당에서 엄마랑 목마를 타고 놀던 기억이다. 엄마는 서있고 나는 마당에서 바퀴달린 플라스틱 목마를 타고 돌아다녔던 것 같다. 그때는 엄마도 젊었다. 엄마는 긴 머리를 파마해서 거울앞에서 빗곤 했다. 짧은 순간이지만 이 첫 기억을 떠올리면 굉장히 신비한 느낌이 든다. 시간을 뛰어넘는 기분도 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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