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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 Aug 22. 2022

강렬한 기억을 불러오는 것에 대해

 적대적, 호의적, 중립적으로 쓰기-뼈글3

강렬한 기억을 불러오는 걸 생각하라니 술이 생각난다. 적대적으로 쓰라면, 아이가 두 돌 정도 됐을 때 삼촌이 일하는 사무실에서 세 달 정도 아르바이트를 햇었는데 사람들이 얼마나 술을 많이 마시던지. 또 전국 각지에서 산해진미를 가져오는 건 얼마나 또 좋아하고 맛있는 거 먹는 걸 얼마나 좋아하던지. 매일 맛있게 먹고 마시는 하루하루였다. 나는 원래부터 술을 잘 마시는데, 내가 술을 잘 마신다고 하면 사람들이 얼마나 좋아하는지. 그렇게 술을 즐겁게 기회가 될 때마다 이 술 저 술 가리지 않고 마시면서 즐거워하던 어느 날, 문득, 내가 술에 의존하는 건 아닌가 하는 뼈아픈 자각이 생겼다. 그때부터 술을 조심해야되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또 세월이 지나면서 동네에서 또 회사에서 술 잘 마시는 사람들을 만났다. 어떤 사람은 끊어야 하는데 못 끊고, 어떤 사람은 술 못 마시는 사람은 친구 안 한다며 술을 너무 사랑하면서 마시고. 등등. 그런 사람들을 만나며 또 술을 마셨다. 그러다가 코로나가 왔다. 답답한 마음에 맥주 한 잔씩. 맥주가 점점 저렴해져서 부담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네 개씩 사다놓는 맥주가 금세 없어졌다. 그때는 그게 문제라는 생각을 못했는데 건강 검진을 받아보고 고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크게 두 번 술이 나를 지배할 수도 있겠다는 자각이 들었고 요즘은 거의 안 마신다. 이게 술에 적대적인 감정인가? 적대적이라고 하려면 알콜 중독자에게 두드려 맞은 기억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근데 술을 진탕 마시고 나면 다음날 저절로 적대적인 기분이 든다. 하지만 이 기분은 며칠 있으면 사르르 사라진다. 

호의적으로 써보자면, 술을 마시면 긴장이 풀리면서 기분이 확 달라진다. 우리는 얼마나 긴장하고 사는가? 스트레스 속에 하루 종일 보내기도 한다. 그럴 때 한 잔 술을 마시면 앞에 있는 사람과도 편안해 지지만 내 기분이 좋아진다. 

중립적으로 써보자면... 술에 중립적으로 쓴다는 것 자체를 잘 모르겠다. 요즘은 자녀들이 어리지 않아서 더욱 술을 안 마시고 매일 기분에 마시는 술이 몸을 망칠 수도 있다는 생각에도 더 안 마신다. 하지만 나는 술 마시고 음식 먹는 먹방을 본다. 음. 이거  꽤 거창한 고백 같다.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소주나 소맥을 마시는 사람을 보면 참 즐겁다. 

지금까지 마셔본 술 중에서 가장 감동적으로 맛있었던 건 한산 소곡주. 내가 안 마시는 술은 양주. 양주는 너무 금방 취해서 힘들다. 예전에 교수님이랑 동기들이랑 술을 마시다가 2차를 간 일이 있었는데 옆에 앉아 있던 다른 과 교수가 양주병을 들고 와서 우리에게 한 잔씩 돌렸다. 좋은 술이라고 했지만 나는 안 마셨다. 그걸 마시면 그날 나머지 일정을 망칠게 뻔해서. 역시나 이후로 2시간 정도 더 놀다가 파했는데 교수님은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이 안 난댄다. 이 양주가 내 감정을 부른다. 부르르. 한산 소곡주는 마셔본 지 10년도 더 지나서 이제 잘 기억이 안 난다. 기회가 되면 다시 마셔보자. 누가 선물로 준다면 참 좋겠다.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기'가 너무 길어서 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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