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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 Aug 23. 2022

한 가지 색깔을 찾으며 산책하기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기 4

원래 아침 일찍 쓰려고 했는데, 책을 딱 펼치니, 한 가지 색깔을 정해서 15분  동안 그 색을 찾으며 걸어본 후 느낌을 적어보라고 해서 쓰지 못했다. 

오늘 외출할 일이 있어서 그때 찾으면 되겠다 생각했는데 무슨 색을 할지 정하지 못했다. 옛날에는 좋아하는 색깔이 파란색이었다. <그랑블루> 때문인가? 파란색이 참 좋았는데 지금은 잘 모르겠다. 색은 색일 뿐. 내가 색을 몰라서 옷을 못입는다는 생각만 들 뿐. 색을 잘 써서 그림을 그리는 조카를 보면 색 감각을 타고났는지 부러울 뿐. 더더욱 자신감이 떨어지는 분야가 색깔이다. 그래서 마음을 정하지 못한 채 바쁘게 준비하고 무작정 나갔다가 문득 이 미션이 생각났고 눈 앞에 노란색이 보이길래 노란색을 찾아보기로 했다. 노란색이 의외로 많았다. 

오 늘 햇빛 자체가 노란색이었다. 지난 월요일처럼 정말 뜨겁고, 가을보다 훨씬 강렬하면서도 보통 여름 땡볕과는 달리 좀 건조한 햇빛이었다. 그래서 노란색을 보면 더 노랗게 보였다. 

우선 차선의 중앙선이 노란색이었고, 도로에 그린 많은 선이 노란색이었다. 

베트남 쌀국수집이 얼마전 이사했는데, 아직 가게는 그대로 빈 채로 남아있다. 그 집 간판과 벽이 노란색이었다. 

노란색 꽃도 봤다. 마리골드 꽃이 아닐까 싶다. 아주 샛노랗고 가는 꽃잎이 수북이 쌓인 에쁜 꽃이었고 노란 꽃은 내가 찾는 색이라 그런지 아니면 그 밝은 느낌 때문인지 더 예뻐 보였다. 

그리고, 벚나무의 초록잎들 사이에 벌써 노란잎이 섞여 있었다. 바닥에도 노란잎이 몇 개 떨어져 있었다. 이제 가을이 오나보다. 

노란 색을 찾는 일이 그렇게 재미있지는 않았다. 내 뼈를 건드린다는 느낌이 도무지 들지 않는다. 내 뼈에는 뭔 소리가 새겨져 있다냐. 한 때는 깊이감이 있었던 것도 같은데 이제 생활에 치여 내 삶에 신비, 비밀 같은 건 사라졌다. 너무 밝은 색을 찾았을까? 밝고 예쁘고 병아리와 유치원 모자를 떠올리게 하는 노란색은 나랑 안 어울리는 것 같다. 그럼 무슨 색이 어울릴까? 보라색은 엄마가 좋아하는 색이라 싫다. 빨간색은 너무 흔해서 싫고 '열정'이라는 상징이 지루하다. 초록색은 안정감을 주고 눈을 좋아지게 하지만, 딱히 좋지는 않다. 남색? 남색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을까? 무난해서 옷 입기는 좋지만. 


갈색??? 사실 갈색 좋다. 푸하하. 가죽을 좋아하거나 가죽을 다루는 사람은 갈색을 아주 좋아할 것 같은데 갈색 구두에서 풍기는 톡톡 튀는 느낌, 뭔가 깊은 정서를 풍기는 듯한 무게감, 세월을 품은 듯한 노련미가 보인다. 아... 나 갈색 좋아하네. 다음에 기회 되면 갈색을 찾으며 다녀와야겠다. 이걸 글감 노트에 적어둬야겠다. 가을에 나가면 갈색 많이 볼 수 있으려나? 갈색 중에서도 약간 붉은 끼가 노는 갈색이 좋다. 밝아 보이고 강렬해 보이고, 은근한 자신감이 보이는 것 같다. 그런 색을 찾아봐야겠다. 

그래도 좋아하는 색깔 하나는 찾았으니 보람 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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