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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 Aug 25. 2022

내가 아주 좋아하는 장소에 대해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기 6

내가 좋아하는 장소? 

여러 군데가 생각난다. 우선 가장 먼저 떠오른 건 스무살 때 갔던 이스라엘의 키부츠다. 울타리 안에 여러 채의 집과 공동 생활 시설, 그리고 그 옆에 붙은 대추야자밭으로 이루어진 그 키부츠가 좋았다. 잔디밭으로 걸어서 내가 일하던 부엌으로 출근하는 길과 넓고 높은 공동 식당에서 수다떨며 음식을 먹던 키부츠 주민들을 보는 것도 좋았고 한쪽에 놓인 수영장에서 터키 커피 마시고 다이빙 하고 친구들하고 노는 시간도 좋았다. 편안하고 걱정이 없었고 외로움이나 불안 같은 건 전혀 끼어들 틈이 없었다. 3개월밖에 안 있어서 참 아쉬웠고 돌아와서는 그곳이 그리워서 한참 괴로웠다. 요즘 젊은이들이 좋아하는 게스트 하우스의 스태프로 일하는 것과 비슷할까? 제주도도 그렇게 자연이 많고 푸르고 바다도 있고 여유있는여행객들과 함께 하니까 비슷한 것 아닐까? 

키부츠에서 여러 나라 사람들을 만났기 때문에 내 시야도 많이 넓어졌고 중동 문화도 쬐끔이지만 맛볼 수 있었다. 또 성경에서 많이 보던 갈릴리 호수나 홍해, 여리고 같은 지역도 흥미로웠다. 차로 조금만 가면 로마 원형경기장이 있었는데, 이스라엘에 왜 로마 원형 경기장이 있는지 한참 동안 궁금했다. 유럽과 그 주변은 가는 곳마다 로마 유적이 있으니 참 대단하기도 하다. 

한때는 내가 그때 기억을 좋아하는 이유가 그때 만난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는데, 좋아하는 장소이기도 했던 것 같다. 

내가 쓰던 방은 방 세 개가 나란히 붙어 있고 그 중 하나는 거실로 쓰는 구조였다. 작은 발코니를 통해 밖으로 바로 통하고 바로 앞에는 잔디밭이 있어서 발코니에 앉아 이야기하고 잔디밭에서 파티를 하기도 했던 기억도 난다. 앞 건물에는 태국 노동자들 몇 명이 있었다. 파티를 할 때는 그 사람들도 와서 태국 노래를 틀어주고 태국 사람들 부엌에서 계란후라이를 얻어먹고 놀기도 했다. 그 사람들은 밤에 몰래 돼지고기를 어디서 공수해서 먹는다고 했었는데 정말일까? 지금도 아리송하다. 그렇게까지 해서 돼지고기를 먹는다? 누가 퍼트린 가짜 소문 같다. 

낮은 건물과 높은 하늘과 초록 잔디밭과 뜨거운 태양빛과 잔디밭을 어지럽히던 가시덤불이 생각난다. 

방에는 아주 작고 푹 꺼진 침대 세 개, 아주 좁은 옷장 세개, 벽걸이 선반 세개, 작은 탁자가 다였고 내 침대 하나, 선반 하나, 옷장 하나로 해결되는 미니멀한 생활에 안정감을 느꼈던 것 같다. 

이렇게 좋아하던 장소를 여기에 적고 나니까.... 이상하게 내가 사는 이곳도 좋은 것 같다. 그때처럼 루즈하게 어리둥절하게 지내는 것도 좋지만, 지금처럼 바쁘고 어리둥절하게 지내며 가정을 꾸리는 것도 좋다.  많은 사람들을 만나서 재미있고 좋았지만, 매일 만나는 사람이 똑같은 요즘도 좋다. 그때나 지금이나 사방 분간이 안 되고 어리둥절한 건 마찬가지인 것 같다. 나이 들면 좋아지는 줄 알았는데... 아닌 것 같아서 기쁘다. 크하하. 계속 이렇게 눈치 없이 살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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