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리브 Aug 29. 2022

시 이어쓰기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기 10

"산에 오면 산 소리 벌에 오면 벌 소리

적막강산에 나는 있노라"

오늘의 글감은 시집을 펼쳐 처음 보는 구절을 이어서 써 보는 것이다. 

우리집에는 시집이 몇 개 없어서 시집을 고르기는 쉬웠다. 

내가 고른 시집을 알아본 사람이 있으려나? 

백석의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에 있는 '적막강산'이라는 제목의 시다. 

시를 이어서 쓰라고 했는데, 시를 왜 골랐는지를 쓰고 있네. 

산은 산이요, 물은 물이다, 와 통하는 구절인가?

적막강산이 아니라 복작복작하고 훈훈한 곳에 있었다면 산에 오면 산 소리 벌에 오면 벌 소리가 들리지 않고 사랑과 즐거움이 흘렀을 텐데. 

굽이굽이 흘러 적막강산에 도착한 저 사람의 쓸쓸한 속내가 참말로 아리다. 

지금은 일제 시대가 아니고, 잘만 굴리면 누구나 부자가 될 수 있다고 부르짖는 사람들이 많지만, 누구든 살다 보면 적막강산에 서게 되는 때가 있을 것이다. 뜻하지 않은 범죄를 저질러 교도소에 갇혔거나, 암에 걸려 몇 달밖에 못 살게 되었거나, 사업이 망해 가족에게도 버림받고 혼자 외로운 방에 앉아 있거나, 가족이나 친구의 배신으로 모든 걸 빼앗겼거나, 배우자의 불륜으로 혼자 남았거나, 정치적으로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버려졌거나, 책임감 없는 부모가 보육원에 자신을 맡기고 떠났거나, 큰 뜻을 품고 고향을 떠났지만 하는 일마다 실패했거나, 노는 무리에서 스트레스 해소용으로 왕따를 당했거나, 속절없는 정신병에 걸려 남에게 폐만 끼친다는 생각으로 괴롭거나....... 

백석 시인은 몇 백 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한 천재시인이라고 하지만, 적막강산에 서 있을 때의 기분은 전혀 천재도 아니고 내세울 것 없는 사람이랑 다를 바 없을 것이다. 내가 저렇게 외롭고 막막하다고 생각할 때, 탈출구가 보이지 않는다고 생각할 때, 그것도 모자라 남들에게는 괜찮은 척하느라 진이 다 빠지고 더 외로울 때, 이런 구절을 생각하면 위안을 얻을 수 있을 것 같다. 어떤... 동지애나 인류애가 생기는 기분이 들 테니까. 혼자가 아니라는 기분만으로도 큰 위안이 되지 않는가?  

작가의 이전글 살고 있는 도시에 대해 쓰기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