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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 Aug 30. 2022

내가 두더지라면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기 11

내가 두더지를 좋아해서 그러는 게 아니라 그냥 퍼뜩 생각이 났다. 두더지는 땅속에서 곤충을 잡아먹으면서 살고 밤에 잠깐 밖에 나온다고 한다. 두더지라면 그렇게 살겠지. 뭐 쓸 말이 없는데 왜 이런 걸 글감으로 써놨을까? 동화에야 동물이 주인공이 돼서 친구도 사귀고 파티도 가고 그러지만, 진짜 동물이라면 그냥 환경에 맞춰 유전자에 따라 살다가 죽는 것 아닐까? 

사람으로 잘 살아야 내생에 다시 사람이 될 수 있다고 하는데 나는 그런 말을 들어도 별로 잘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안 들더라. 

사람에게 학대 당하는 동물로 태어나서야 너무 힘들고 괴롭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하루살이나 나방으로 태어난다면 생명이 짧으니까 부담이 없을 것 같고, 혹여 거북이로 태어난다면.... 그러다 바다에서 그물에 걸려 목이 졸린다면... 에구. 괴롭겠다. 아니면 거북이로 태어나서 어느 연못에서 자라게 된다면. 보이는 건 휴가철에 찾아오는 관광객들이고, 못된 아이들이 동전이나 돌을 내 등딱지에 던지며 좋아하는 게 일이라면? 

생각만 해도 답답하고 화가 나네. 

그런 아이들에게 복수하기 위해 인간으로 태어나던가 호랑이로 태어나던가 해야 할 것 같은데, 거북이가 누군가에게 니가 복을 많이 쌓아야 다음 생에 진급할 수 있다는 말을 해주려나? 

동물이고 사람이고 생의 혹독함은 비슷한 것 같다. 재수가 좋으면 편안하게 살겠고 아니면 온갖 고생을 다하다가 눈도 못 감고 죽을 수 있는 건 동물이나 사람이나 비슷한 것 같다. 

생명체의 목적은 종족 보존이라고 한다. 물개로 태어나서 물개를 낳고 늙어 죽거나 어린 물개 시절에 누구에게 잡아먹히더라도 동료들이 살아남아 종족을 보존한다면 의미없는 죽음이라고 할 수 없다. 인간의 목적도 그럴까? 인간도 종족 보존이라는 대명제를 갖고 태어났을까? 

두더지라면 땅 속에서 벌레를 잡아먹고, 벌레를 많이 먹은 날엔 배부르게 잠자고 많이 못 먹은 날엔 배고프게 잠자고, 계절에 따라 굴을 파고 짝을 찾고 새끼를 키우고 그러다 죽는 거 아닐까나. 

내가 두더지는 아니지만 두더지처럼 살고 싶다. 속상해하고 걱정하고 우울해하고 칠렐레팔렐레 방방 뛰는 모습 없이, 자의식 없이, 살아있는 그대로 살고 싶다. 그래서 두더지를 골랐나보네. 이거 심리상담가에게 상담받을 일이구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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