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올리브 Sep 01. 2022

질투를 느낀 기억

뼛속까지 내려가서 쓰기 12

이제 책에 나온 글감 중에 뭘 쓸만한 게 없다. 가장 무서웠던 기억, 스승으로 모시는 사람, 초록으로 기억되는 장소... 다 딱히 떠오르지 않는다. 그래서 몇 초 생각하다가 이런 글감을 생각해 봤다. 

나는 질투를 처음 느꼈을 때가 생생하게 기억난다. 내가 대학 1학년 대 좋아하던 남학생의 썸타는 사이였던 것으로 보이는 여학생에게. 그 여학생의 이름은 아주 여성스럽고 목소리도 얼마나 간드러지고 웃음을 흘리는지. 얘는 정녕 이런 애가 좋단 말인가 싶었지만. 자세한 사연은 모르기에 알 수는 없고. 

질투를 느낀 사연은.... 어떻게 하다가 그 친구 삐삐 음성 사서함의 비밀 번호를 알게 된 거다. 알 수밖에 없는 게 비밀 번호가 0000이었다. 그래서 집에서 틈만 나면 걔 삐삐 사서함을 들었다. 그러다 그 여자가 남긴 음성을 들었다. 별 시덥지 않은 이야기였는데, 하하호호 자꾸 웃으면서 뭔가 수줍은 듯 말하던 게 기억난다. 내용이 기억 안 나는 건 정말 내용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난 불타오르는 질투를 느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 이런 게 질투구나... 이런 걸 다 느껴보는구나. 아직 세상에 내가 느껴보지 못한 감정이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둘은 잘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내 짝사랑은 응답없이 끝나고 잘 연락도 하지 않다가 1년 후배를 사귄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다가 컴퓨터실에서 차례를 기다리면서 그 여학생이 같은과 남학생들이랑 대화하는 모습을 봤는데... 참 독특한 아이였다. 입이 엄청나게 독했다. 아직까지도 그렇게 심하게 독설을 날리는 인간은 못 봤다. 하지만 나쁘게 보이기보다는 좀 참 개성있네. 걘 이런 앨 좋아했구나, 싶어서 뭔가 아련한 기분? 풉. 

그 둘은 이 친구가 군대 가기 전에 헤어진 모양이다. 군대에 가니까 심심했던지 나에게 전화를 해서 몇 번 만났는데 훈련소에서는 그 후배를 생각하며 매일 베개를 적셨다고. 그럴 거면 잘 만날 것이지. 왜 헤어졌을까나? 그때 물어볼 걸 못 물어봐서 너무 궁금하다. 

그 친구는 제대하면서 이제 다시는 연애를 안 하겠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떻게 사는지 궁금하다. 더 좋은 사람이 되어 있으면 좋겠다. 좀 더 평범하고 순수하게 자신과 화해하고 지내기를 바란다. 

작가의 이전글 내가 두더지라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