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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 Feb 12. 2023

난데없이 영어 강사 되기

날 왜 뽑으셨어요

지난주 수요일 오전에 고등학생 영어 강사를 뽑는다는 공고를 보고 지원했는데 몇 시간 후 오후에 면접 보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그래서 갔더니 문제를 하나 풀어서 설명해 보라고 하고 이것저것 물어본 후 밤에 연락 주겠다고 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문자가 와 있었다. 그날부터 가르쳐달라고. 


그래서 한 시간 수업을 하고 왔다. 단어 시험을 보고 유형 별 문제집을 처음부터 풀었다. 본문을 한 사람씩 돌아가며 읽고 해석하게 시켰더니 아이들의 표정이 점점 불만이 가득한 얼굴이 됐다. 문제를 풀어본 후에는 한 사람씩 돌아가면서 답을 말해보라고 했는데 이때도 점점 분위기가 어두워졌다. 집에 돌아와서 다음날 원장님에게 전화가 왔다. 그래서 어떻게 수업하기로 하셨어요? 그때까지만 해도 막연하게 단어 하고 문법 하고 기출문제 풀면 되겠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원장님은 여러 가지 문제를 구체적으로 물어보았고 대답하면서 내 대답이 미숙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집에 와서 처음으로 작년 수능 문제를 다운로드해서 풀어보았다. 시간이 70분이나 되고 문제도 45문제, 내용도 아주 심오해서 풀기가 쉽지 않았다. 이런 거였구나... 그렇게 수능에 대해서 공부하고 학생들이 공부한 문제집의 구성도 살펴보았다. 그런데 다음날 원장님에게 또 카톡 폭탄이 날아왔다. 아이들이 내 수업 방식이 너무 FM이라서 적응하기 힘들다고 했다고. 그때 나 잘리는 줄 알았다.  밥 먹다가 그런 문자를 받으니 밥 맛이 뚝 떨어졌다. 역시 무리한 시도였던 걸까? 


나는 다음 시간부터는 전략적으로 가르쳐보겠다고 답을 보냈다. 원장님은 아마도 지금 무척 후회하고 있을 것이다. 조금이라도 수능 기억이 남아 있거나 수능 강사 경력이 있는 사람을 뽑을 것을..... 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발등에 불 떨어진 심정으로 문제집을 공부하고 기출문제와 변형 문제를 찾을 수 있는 대로 찾아보았다. 그리고 수능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밝히는 수많은 동영상 중 몇 개를 틀어봤다. 몇 개 보다 보니 내가 첫 수업에서 얼마나 헛다리를 짚었는지 알 수 있었다. 학생들에게 미안했다. 그래도 이제 감을 좀 잡았으니까 다음 시간부터는 제대로 가르쳐보자, 그래서 점수를 올려보자 생각하고 마음을 정리하려고 노력했다. 


마음이 많이 답답하다. 학원 강사를 해보겠다고 나선 이유는, 요즘 번역 일감이 적어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일이 들어오기를 기다려야 하는 입장인 것이 프리랜서의 어려움 같다. 진작 넘사벽 실력을 갖췄다면 PM들이 쫓아다니는 번역가가 됐다면 이런 일도 없었을 거라는 자괴감은 늘 나를 따라다닌다. 그 자괴감이 크게 자라기 전에 싹을 자르고 자신감과 희망의 씨앗에 물을 주는 일도 잊지 않는다. 하지만 내가 잘못한 일이라 받은 질책은 참 마음 아프다. 내가 실수했다는 걸 인정하기가 그렇게 힘든 일일까? 


더이상 나를 실수로 보지 않게 하겠다고 이를 갈고 있다. 수업 준비를 빡세게 해서 다음 수업은 잘 대처해보려고 한다. 그것 말고도 내가 하는 몇 가지 업무를 잘 해보겠다고 오랜만에 무거워진 어깨 근육을 강화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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