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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올리브 Sep 06. 2022

무서웠던 기억

16.

아빠랑 무슨 산에 갔을 때였다. 순식간에 날이 어두워져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산에서 고립돼 죽는 줄 알았다. 사람 발자국 소리라도 들렸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간절하게 들었고, 돌을 헛디뎌서 데굴데굴 굴러서 다리라도 부러지면, 그게 내가 아니라 아빠라면, 우린 꼼짝없이 산에서 죽겠구나 싶었다. 이런 생각을 줄줄이 한 건 아니고 그런 늬낌이 강하게 들었다. 

다행히 좀 헤매면서 내려오니까 다 내려왔고 불빛도 보여서 무사히 집에 왔다. 아빠도 좀 무서웠다고 한다. 

어떨 때는 사람이 무섭고, 어떨 때는 사람이 없는 게 무섭다. 

또... 무서웠던 기억이 아니라 고독했던 기억이 하나 있다. 

20대 후반, 결혼식을 한 달 정도 앞 둔 여름 휴가 일주일을 이용하여 대흥사에 템플스테이를 갔었는데, 한 3일 째 되는 날 절의 종을 친다며 다같이 거기 서서 종소리를 들었다. 그런데 아득하게, 이 세상에 나 혼자구나... 하는 이미지가 머리를 강하게 때렸다. 마치 영화 <그래비티>의 주인공이 우주복에 의지해 우주를 떠돌듯 나도 검고 광활한 우주에 혼자 떠서 종소리를 듣는 것 같았다. 

템플스테이에서는 묵언하라고 했다. 그래서 며칠 동안 사람들과 함께 있으면서도 아무 말 안하고 혼자 있는 듯 있었던 게 그런 감각을 불러온 것 같다. 그리고 댕~~ 댕~~ 울리는 종소리까지 더해져서 더 그랬나보다. 그때 느꼈던 고독감은 정말 무섭고 강렬해서 눈물이 터져나올 지경이었다.


태아는 뱃속에 혼자 있는가, 엄마와 함께 있는가? 우리는 혼자인가, 함께인가?

태아는 지극히 행복한 상태에 있다고 한다. 아기가 점점 커져서 뱃속이 좁겠다고 했더니 의사선생님이 그랬다. 지극히 행복한 상태. 우리가 지향하는 상태. 아무 불안도 걱정도 불편함도 외로움도 없는 만족스러운 상태라고 한다. 우리는 왜 그런 만족을 버리고 세상에 태어나서 온갖 지저분한 고난을 겪고 다시 아무것도 아닌 상태로 돌아가는지? 

어쨌든간에 그때 느낀 강렬한 고독감은 나한테 어떤 힘을 준 것 같다. 엄살부리고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도 한 것 같다. 

우주가 우리한테 던지는 외로움에 질식당하지 말자. 마지막 숨이 사라지는 순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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